문인은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인은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2026.08.17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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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은
서로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은 어쩌면 문인들인지 모릅니다.
남들은 그냥 지나치는 풀잎 하나에도 마음을 주고, 늦은 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도 사연을 붙이며, 낯선 사람의 굽은 등에서도 오래된 슬픔을 읽어내는 사람들이 문인입니다.
꽃 한 송이 지는 일에도 가슴 한켠이 서늘해지고, 누군가의 짧은 한숨 하나를 듣고도 밤늦도록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여린 사람들이 글을 씁니다.
그렇게 착한 사람들이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수필을 쓰며, 사람의 상처와 세상의 아픔을 대신 말해줍니다.
가끔 생각해 봅니다.
세상의 아픔에는 그토록 민감한 우리가 정작 가까이 있는 문우의 마음에는 너무 무심했던 것은 아닌지요.
한 편의 시에 담긴 떨림은 알아보면서도 그 시를 쓴 사람의 떨리는 마음은 놓쳐버린 것은 아닌지요.
문장 하나의 결을 따지면서 사람의 마음에 난 상처는 너무 쉽게 지나친 것은 아닌지요.
나 또한 자유롭지 못합니다.
좋은 글을 쓰겠다는 욕심으로 사람을 앞질렀고, 옳은 말을 한다는 생각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내 문학을 지키려다가 남의 문학을 작게 보았을 수도 있고, 내 생각을 세우려다가 상대의 자존심을 무너뜨렸을 수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부끄럽습니다.
문학을 오래 했다는 것이 사람을 더 따뜻하게 품었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책을 많이 냈다는 것이 마음까지 깊어졌다는 증명도 아닐 것입니다.
상을 받고 이름을 얻었다고 해서 한 인간의 품격까지 높아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문학의 마지막 공부는 어쩌면 문장이 아니라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잘 쓴 문장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오래 남고, 날카로운 비평보다 말없이 내민 손 하나가 한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울 때가 있습니다.
문인은 본래 마음이 약한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한마디 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서면서도 오래 마음앓이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약함이 아니라 문인이 지닌 감수성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그 여림이 있기에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받아들이고, 이름 없는 풀꽃과 버려진 돌멩이에도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그 귀한 마음을 우리가 서로에게 먼저 써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잘되면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누군가 좋은 시를 쓰면 아낌없이 손뼉 쳐주고,
후배가 첫 책을 내면 자신의 첫 책을 펼치던 날처럼 기뻐해주고,
선배가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면 그 세월 앞에 따뜻하게 고개 숙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조금 못났으면 어떻습니까.
문장이 조금 서툴면 어떻습니까.
생각이 조금 다르면 또 어떻습니까.
우리는 모두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아직도 자신을 고쳐 쓰며 살아가는 한 편의 미완성 원고가 아니겠습니까.
누군가의 허물을 보았을 때 한 번쯤 이렇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나에게도 저런 날이 있었겠지.
나 또한 누군가를 아프게 했겠지.
그 사람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많이 울었겠지.
그렇게 한 번만 더 헤아려준다면 문단은 지금보다 훨씬 따뜻해질 것입니다.
문학은 사람을 이기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품기 위해 존재합니다. 문인은 사람보다 높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아픔 가까이 내려앉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부터 시방 그리 살고 싶습니다.
말을 조금 줄이고, 남의 말을 조금 더 듣고, 내 작품을 자랑하기보다 다른 문우의 좋은 문장에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옳음을 내세우기보다 따뜻함을 남기고 싶습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 이 문단을 떠날 날이 옵니다.
그때 몇 권의 책을 냈는지보다, 몇 개의 상을 받았는지보다, 누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는지가 더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참 좋은 문인이었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여리고 착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 문인이라면,
이제 그 여림을 서로에게도 내어주었으면 합니다. 남의 눈물을 시로 쓰기 전에 가까운 문우의 눈물을 닦아주고, 사랑을 노래하기 전에 서로를 사랑하며, 사람을 말하기 전에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부터 반성합니다.
나부터 낮아지겠습니다.
나부터 한 사람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겠습니다.
우리의 문학이 오래 살아남는 길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서로의 글을 빛내주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지켜주는 일. 그것이 문인이 문인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따뜻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시인지도 모릅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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