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기 전에
가을이 오기 전에 2026.08.17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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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기 전에
저녁 강가에 한동안 앉아 있고 싶다
한낮의 불을 다 건넌 물이 마지막 햇살 한 조각 가슴에 눕혀두는 시간
바람은 아직 여름의 체온을 품고 갈대 끝을 천천히 지나간다
매미 울음도 어제보다 한 뼘 낮아지고
담장 너머 능소화는 붉은 입술을 다문 채 지는 해를 바라본다
계절은 큰 소리로 떠나지 않는다
풀잎 끝에 맺힌 이슬 하나 새벽 창문에 스미는 서늘한 기척 하나
그렇게 아주 작은 문으로 들어와 사람의 옷깃부터 건드린다
가을이 오기 전에 한 번쯤 먼 길을 돌아온 그리움을 만나고 싶다
오래 부르지 못한 이름 하나 강물 위에 내려놓으면
물결은 묻지도 않고 먼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그리움에는 곁에 두는 것보다 멀리 흘려보낼 때 더 깊어지는 빛도 있으므로
들판은 벌써 제 몸 안에 황금빛을 숨겨두고
나무들은 푸른 잎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시간을 접고 있다
꽃이 지는 일도 새가 떠나는 일도
저마다 한 계절을 다 살아낸 아름다운 퇴고일 것이다
가을이 오기 전에 내 안의 뜨거웠던 것들도 조금 덜어내고 싶다
끝내 전하지 못한 말 너무 오래 품었던 미련 손에 쥔 채 놓지 못했던 몇 개의 날들
저녁놀 속에 하나씩 풀어놓고 나면
빈자리마다 바람이 와 앉을 것이다
어느 새벽 문을 열었을 때
마당 한쪽에 낯선 서늘함이 먼저 와 있고
밤새 풀벌레 몇 마리 어둠을 가늘게 꿰매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가을은 먼 산 너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여름이 제 뜨거움을 한 겹씩 벗어놓은 자리
그 자리에 말없이 내려앉는 한 줄의 깊은 숨일 테니
가을이 오기 전에
나는 아직 남아 있는 여름빛 한 줌을 오래 바라보고 싶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계절의 체온을
한때 몹시 사랑했던 사람의 뒷모습처럼
붙잡지 않고
다만 눈이 시리도록 보내고 싶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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