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어머니의 숭늉 ㅡ청람 김왕식

어머니의 숭늉 2026.08.18
어머니의 숭늉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머니의 숭늉

어머니가 숭늉을 끓이신다

솥바닥에 눌어붙은 밥알과 찬물과 마지막 불씨가 한 몸으로 끓는다

가난도 그 안에 있고 저녁도 그 안에 있고 어머니도 그 안에 있다

보글보글

끓는 것은 물인데 따뜻해지는 것은 집이다

“뜨거우니 천천히 마셔라.”

말씀도 숭늉이고 숭늉도 말씀이다

어머니는 드시지 않는다 배가 부르다 하신다

어린 나는 마시고 어머니는 바라본다

마시는 사람과 바라보는 사람이 따로 있지 않다

한 사발 안에서 어머니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어머니가 된다

머리에 흰빛이 내려앉고 고향집 솥은 사라지고 아궁이도 식었다

사라진 것이 어디 있으랴

솥은 가슴에 있고 불은 숨에 있고 어머니는 따뜻함 속에 계신다

삶이 쓰면 숭늉이 끓고

사람에게 데이면 숭늉이 끓고

목에 세상이 걸리면 또 숭늉이 끓는다

보글보글

그 소리는 어머니의 소리도 아니고 내 소리도 아니다

살아 있는 것들이 서로의 속을 데우는 소리다

“뜨거우니 천천히 마셔라.”

누가 말하고 누가 듣는가

두 손이 사발을 들고 사발이 두 손을 받든다

물이 나를 마시고 내가 물을 마신다

비우면 가득하고 가득하면 비어 있다

어머니가 없으니 어머니 아닌 것이 없다

솥에도 물에도 저녁에도 주름진 내 손등에도

어머니가 있다

오늘도 한 사발을 비운다

비운 자리에 어머니가 차오른다

처음부터 숭늉은 식은 적이 없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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