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ㅡ청람
나는 누구인가 ㅡ청람 2026.08.18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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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누구는 ‘뜰 앞의 잣나무’라 했다
잣나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푸른 채 서 있었다
바람이 오면 흔들렸고
눈이 오면 눈을 이고
새가 오면 가지를 내주었다
나는 누구인가
다시 물으니 잣나무 아래 그림자 하나 누워 있었다
그림자에게 물었더니 해를 가리켰다
해에게 물었더니 구름 뒤로 들어갔다
구름에게 물었더니 비가 되어 내렸다
빗물에게 물었더니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땅에게 물었더니 잣나무 한 그루를 밀어 올렸다
다시 뜰 앞이다
잣나무가 서 있다
처음 물었던 자리와 다르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
이름을 말하면 이름이 남고
몸을 말하면 몸이 남고
마음을 말하면 마음이 남는다
남는 것이 있는 동안 둘이다
나와 나 아닌 것
보는 나와 보이는 것
묻는 나와 대답하는 것
잣나무는 그 둘을 세우지 않는다
푸르면 푸르고 흔들리면 흔들리고 비에 젖으면 젖는다
한 번도 잣나무라 말한 적 없이 잣나무다
새벽이 오면 새벽 속에 있고
저녁이 오면 저녁 속에 있다
살아 있으면서 살아 있음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내가 잣나무를 보는지 잣나무가 나를 보는지
그 경계마저 뜰의 바람 속으로 흩어진다
나는 누구인가
대답 하나를 얻으려 했던 입이 닫히고
질문을 붙들던 손이 풀어진다
그때
‘뜰 앞의 잣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한 세계가 그대로 서 있다
나도 그 앞에 서 있다
아니
앞도 없고 뒤도 없다
나무도 없고 나도 없다
잣나무 푸른 것만 푸르다
바람 부는 것만 분다
새 우는 것만 운다
나는 누구인가
더는 대답이 오지 않는다
대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뜰 앞의 잣나무가 이미 다 말하고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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