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환포영 如夢幻泡影 ㅡ청람
여몽환포영 如夢幻泡影 ㅡ청람 2026.08.18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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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환포영 如夢幻泡影
새벽이 풀잎 끝에 은빛 한 생을 매달아 놓았다
해가 뜨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로 돌아갔다
꽃잎 하나 물 위에 내려앉는다
물은 꽃을 붙잡지 않고 꽃도 물에게 머물 곳을 청하지 않는다
잠시 서로를 비추고 흘러간다
우리도 그러했으리
한때는 이름 하나를 등에 지고 천 년을 살 듯 걸었고
사랑 하나 얻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었으며
이별 하나 앞에서는 하늘이 끝난 듯 울었다
그 많은 날들이 지금 저녁 강물 위 한 줄기 노을이다
손을 넣으면 잡히지 않고 바라보면 온 강을 붉힌다
여몽환포영
꿈이라 하여 헛된 것이 아니고
거품이라 하여 빈 것이 아니다
거품 하나에도 한순간 하늘이 들어 있고
그림자 하나에도 빛의 생애가 함께 눕는다
꽃이 지는 것은 꽃이 패한 것이 아니다
제 향기를 다 쓴 뒤 흙으로 돌아가는 일
사람이 떠나는 것도 어쩌면 그러하리
한 사람의 체온이 다른 한 사람의 가슴에 남아
몸보다 오래 저녁을 밝히는 일
붙잡지 않아도 된다
구름은 흘러야 구름이고 강물은 떠나야 강물이다
내 손에 남겨 두려 했던 수많은 것들을 펴놓으니
빈 손바닥 위로 바람 한 줄기 지나간다
그 바람 속에
꽃도 있고 사람도 있고 울음도 있고 먼 옛날 어머니의 목소리도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모두 있다
여몽환포영
사라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라
한 모습에서 다른 모습으로 건너가는 일
오늘 내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내일이면 꿈일지도 모를 이 순간
한 번의 눈 맞춤이 한 생보다 깊다
잠깐 피었다 지는 것이 꽃의 허물이 아니듯
잠깐 머물다 가는 것이 생의 허물도 아니다
한 방울 이슬 속에 온 하늘이 머물다 가듯
우리의 한 생도
찰나에 와서 영원을 비추고 간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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