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매미가 귀뚜라미에게 시간을 넘겨줄 때

매미가 귀뚜라미에게 시간을 넘겨줄 때 2026.08.18

시간을 넘겨줄 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매미가 귀뚜라미에게 시간을 넘겨줄 때

매미는 여름을 다 울고서야 울음도 빌린 것이었음을 안다

뜨거운 목청 하나로 숲을 붙들고 있었으나 계절은 이미 가을 쪽으로 몸을 돌리고 있었다

마지막 울음이 나뭇가지에서 녹슬 무렵

풀숲의 귀뚜라미가 어둠 한 조각을 받아 첫 음을 켠다

여름은 죽지 않는다

높은 울음이 낮은 울음으로 옮겨갈 뿐

떠난다는 것은 자리를 잃는 일이 아니라 다음 생에게 하늘 한 칸을 내어주는 일

매미와 귀뚜라미 사이 짧은 침묵 하나

그곳에서 죽음은 등을 보이고 탄생은 얼굴을 내민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제 몫을 다한 생이 다음 생의 어깨에 계절을 걸쳐주는 일이다

―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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