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하늘에서 가을 하늘까지
여름 하늘에서 가을 하늘까지 2026.08.21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여름 하늘에서 가을 하늘까지
여름 하늘은 제 몸을 다 태운 사람처럼 오래 뜨거웠다
구름은 무거운 생각을 등에 지고 산을 넘었고
소낙비는 참아온 말을 한꺼번에 쏟아놓았다
매미들은 한 생을 울음으로 다 쓰고도 나무를 놓지 못했다
사람의 마음도 한철은 그와 같아서
지나간 일 하나를 몇 번씩 다시 불러 세우고
미움 하나를 품은 채 제 가슴 안에 폭염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 날들이 지나며 하늘을 오래 보게 되었다
구름이 와도 붙들지 않고
비가 그쳐도 빈자리를 메우지 않으며
새 한 마리 지나가면 그 흔적까지 허공에 돌려주는 하늘
가을은 여름을 밀어내며 오지 않는다
뜨거웠던 것이 제 온도를 스스로 내려놓고
푸르렀던 잎이 한철의 빛을 다 쓴 뒤 천천히 몸을 비우는 사이
계절은 아무 소리 없이 다음 자리로 옮겨간다
사람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좋겠다
옳고 그름의 칼날을 끝까지 세우지 않고
미운 사람 하나를 마음 밖으로 내치지 않으며
오는 것은 잠시 머물게 하고 가는 것은 뒤쫓지 않는 것
여름 하늘에는 넘치는 것이 많았다
빛도 비도 울음도 욕심도
가을 하늘에는 빈 곳이 많다
그 빈 곳 때문에 하늘은 더 깊어진다
채운 것이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비워낸 자리마다 더 먼 푸름이 깃든다
한 생도 그와 다르지 않으리라
끝내 무엇을 가졌는가보다 무엇을 놓아줄 수 있었는가
얼마나 높이 올랐는가보다 얼마나 낮은 곳까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는가
여름 하늘에서 가을 하늘까지
구름은 머물지 않았고 바람은 제 것을 만들지 않았으며 하늘은 아무것도 붙잡지 않았다
그 아래 한 사람의 마음에도
조금씩 자리가 생긴다
누군가를 더 품을 자리 상처를 오래 두지 않을 자리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을 자리
가을은 그 빈자리로 온다
하늘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비로소 하늘을 닮아가는 것이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