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사思無邪 ― 글을 쓰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일
사무사思無邪 ― 글을 쓰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일 2026.08.22
― 글을 쓰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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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思無邪 ― 글을 쓰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보는 일
공자는
《시경》 삼백여 편을 읽고
그 정신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思無邪.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이다. 이 짧은 말은 시의 기교를 가르치지 않는다. 비유와 상징을 어떻게 만들고, 문장을 얼마나 세련되게 다듬을 것인지도 말하지 않는다. 공자가 먼저 본 것은 문장의 바깥이 아니라 문장을 낳는 마음의 안쪽이었다.
작가라면 바로 이 지점에서 오래 머물 필요가 있다. 글을 잘 쓰는 기술보다 더 앞서는 것은, 글 속에 사특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도록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문장은 마음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을 낮추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그 기색이 문장에 밴다. 자신을 높이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 아무리 감추어도 글의 어딘가에서 고개를 든다. 질투와 허영, 조롱과 과시, 상대를 이겨야 한다는 집념은 붓끝에 묻은 아주 작은 먹점처럼 드러난다.
향은 감출 수 있어도 냄새까지 숨기기는 어렵다. 글에도 사람의 체취가 있다. 잘 쓴 글인데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글이 있고, 다소 거친 문장인데도 자꾸 마음이 가는 글이 있다. 그 차이는 기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문장 뒤에 서 있는 사람 때문이다.
시인은 작품을 쓰기 전에 먼저 자기 마음의 우물가에 서야 한다. 물이 흐린지, 맑은지 살펴야 한다. 그 우물 속에 오래된 원망이 가라앉아 있는지, 질투가 이끼처럼 붙어 있는지, 허영이 수면 위에 기름막처럼 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물이 흐린데 그릇만 고급스럽다고 물까지 맑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체는 그릇이다.
마음은 물이다. 작가에게 더 먼저 필요한 것은 그릇의 화려함보다 물의 맑음이다. 여기서 사무사思無邪는 남을 향한 훈계가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경계가 된다.
이 점이 중요하다. 사람은 문학을 오래 하다 보면 남의 작품을 평가하는 자리에 서게 된다. 비평을 하고, 시평을 쓰고, 심사를 하며, 작품의 장단점을 말한다. 그 일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문학은 서로 읽고, 비평하고, 질문하며 자란다. 문제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은 채 남의 글을 함부로 재단하는 순간이다.
자기 문장은 충분히 다듬지 않으면서 남의 문장에 칼을 대고, 자기 마음속 사특함은 살피지 않으면서 타인의 작품에서 허물을 먼저 찾아내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무사의 자리에서 멀어진다. 그때의 마음은 어쩌면 사유사思有邪, 곧 사특한 생각이 들어 있는 마음에 가까울 수 있다.
사무사가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상태라면, 사유사는 생각 속에 이미 자기 욕망과 편견과 우월감이 끼어든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남의 글을 평하기 전에 자신부터 돌아봐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비평은 작품을 살리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의 지식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이 지적은 상대의 글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보다 내가 더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인가.
이 문장은 문학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자존심을 위한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비평가는 잠시 붓을 멈출 필요가 있다. 남의 글에는 쉽게 보이는 흠이 자기 글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남의 문장에 붙은 티끌은 크게 보이는데, 자기 마음에 박힌 들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인간의 습성이다. 그러므로 문학에서 가장 어려운 비평은 타인의 작품을 비평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비평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먼저 자신에게 붉은 펜을 들어야 한다. 자기의 허영에 밑줄을 긋고, 자기 과시에 삭제 표시를 하고, 자기 오만에 퇴고 표시를 해야 한다. 문장을 퇴고하는 것보다 마음을 퇴고하는 일이 더 어렵다. 문장은 고치면 되지만, 마음은 자꾸 원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무사는 한 번 이루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매번 다시 닦아야 하는 작가의 평생 공부다. 비평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남의 작품 앞에 앉기 전에 자기 마음의 의자부터 닦아야 한다. 사람을 평가하는 순간, 자신도 동시에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글을 썼는가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읽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도 함께 드러난다.
좋은 비평은 칼과 닮지 않는다. 등불에 가깝다. 작품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주되 태워버리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보여주되 사람까지 베지 않는다. 문학의 비평은 사람을 넘어뜨리는 일이 아니라 작품이 더 곧게 설 수 있도록 곁에서 지팡이 하나를 세워주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 비평이 가능하려면 먼저 마음의 사특함을 덜어내야 한다. 질투로 읽지 않고, 경쟁심으로 읽지 않고, 자기 기준만을 절대화하지 않아야 한다. 남의 시를 읽으며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려는 순간 비평은 이미 문학에서 멀어진다. 그때 붓은 칼이 된다.
공자가 시 삼백여 편을 읽고 사무사라고 했다는 사실은, 결국 문학을 대하는 태도의 근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시가 맑아야 한다는 말 이전에, 시를 쓰는 사람의 마음이 맑아야 한다. 비평이 공정해야 한다는 말 이전에, 비평하는 사람의 마음이 사사롭지 않아야 한다. 남을 평가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 그것이 작가의 기본이며 비평가의 첫 자세다. 여기서 이 글 역시 바깥을 향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사무사가 부족하다.”라고 말하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또 다른 사유사의 문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시를 쓰는 자신에게 먼저 들려주는 자성의 목소리다. 문장을 쓰기 전에 마음부터 닦으라고. 남의 작품을 논하기 전에 자기 글부터 돌아보라고. 타인의 허물을 찾기 전에 자기 붓끝에 묻은 욕망부터 살피라고. 비판이 필요할 때조차 그 비판에 사람을 해치려는 작은 독이 섞이지 않았는지 돌아보라고.
좋은 작가는 글을 많이 쓰는 사람만이 아니다. 자기 마음을 오래 퇴고하는 사람이다. 좋은 평론가 역시 많은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가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의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벼루에 먹을 가는 시간처럼 마음을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먹은 갈수록 빛이 나고, 마음은 닦을수록 말이 낮아진다. 말이 낮아지면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게 된다. 그때 비로소 비평에도 온기가 생긴다.
思無邪.
이 세 글자는 남의 글 위에 찍는 도장이 아니다. 자기 가슴 앞에 세우는 작은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한다. 그 뒤에야 남의 작품을 말할 자격도 조금씩 생긴다.
문학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서툰 문장이 아니다. 邪慝한 마음을 감춘 채 남의 글을 쉽게 재단하는 태도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비평은 지식이 많아도 차갑다. 자신을 돌아본 비평은 말이 적어도 깊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사람에게 思無邪는 문학적 기술 이전의 공부다.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남의 글을 함부로 평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평할 일이다. 그 첫걸음을 놓치는 순간, 思無邪는 멀어지고, 思有邪가 붓끝 가까이 다가온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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