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한 풍경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한 풍경 2026.08.23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한 풍경

시인 김왕식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청발산 둔덕에 고즈넉한 벤치가 놓여 있었다. 오래된 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멀리 산등성이가 오후의 빛 속에서 천천히 낮아지고 있었다. 바람마저 소리를 낮추어 지나는 곳이었다.

그 벤치에 한 노신사가 앉아 있었다.

연세는 지긋해 보였다. 어깨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은발은 세월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갈색 안경 너머의 눈은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을 찾으려는 눈도 아니었고,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눈도 아니었다.

회색 재킷에 연푸른 셔츠, 잘 닦인 갈색 구두.

화려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품격이 있었다.

값비싼 옷이 만들어내는 품격이 아니라 오래 살아낸 시간이 사람의 몸에 남겨놓은 단정함이었다. 옷깃 하나에도 서두름이 없었고, 가지런히 놓인 두 손에도 세상과 크게 다툰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옆자리에는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금강경》이었다.

그 순간 풍경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벤치는 더 이상 단순한 의자가 아니었다. 한 사람이 평생 걸어온 길 끝에 잠시 앉아 있는 작은 선방처럼 보였다. 먼 산은 경전의 한 페이지 같았고, 나뭇잎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은 글자 없는 문장을 읽어주는 듯했다.

노신사는 책을 펼치고 있지도 않았다. 이미 읽을 만큼 읽은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니라 책에서 걸어 나와 앉아 있는 사람 같았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큰 성공을 자랑하는 사람의 웃음도 아니고, 세상을 다 안다는 사람의 표정도 아니었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오래 겪어본 사람에게서만 나올 법한 미소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머물렀다.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늙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일이지만 잘 늙는 것은 저절로 오는 일이 아니다.

머리가 희어진다고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은 아니다. 주름이 늘어난다고 사람이 반드시 깊어지는 것도 아니다. 세월은 얼굴에는 흔적을 남기지만 인품까지 대신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을 더 세게 움켜쥔다.

돈을 놓지 못하고, 자리를 놓지 못하고, 이름을 놓지 못한다. 오래 전의 성공을 오늘의 명함처럼 내밀고, 이미 끝난 서운함을 품속에서 몇십 년씩 데리고 산다.

몸은 일흔을 넘었는데 마음은 아직 마흔 살 어느 날의 분노 속에 살기도 한다.

그런 사람에게 세월은 나이가 되었을 뿐 깊이가 되지는 못한다.

벤치의 노신사는 달라 보였다.

무언가를 많이 가진 사람이라기보다 많이 내려놓아본 사람처럼 보였다.

사람에게 배신당해도 보았을 것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적도 있을 것이며, 한때 귀하던 것이 어느 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순간도 지나왔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지나온 뒤 마음속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저 온화한 미소라면, 그것이야말로 한 인간이 세월과 싸워 얻은 가장 귀한 훈장이 아닐까.

그때 《금강경》의 한 구절이 노신사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으면서 마음을 내라는 말이다.

세상을 버리라는 뜻이 아니다. 사랑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사랑하되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일을 하되 성취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며, 좋은 일을 하되 그 공을 마음의 장부에 기록하지 않는 삶이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어도 그 상처에 평생 주소를 두지 않는 것.

한때 높은 자리에 있었어도 그 의자까지 등에 지고 다니지 않는 것.

칭찬을 받아도 거기에 집을 짓지 않고, 비난을 받아도 그 말 한마디를 평생의 감옥으로 삼지 않는 것.

그것이 무소주無所住일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냉담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려 마음은 더 따뜻해진다. 비워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아픔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자신의 이야기로 마음을 가득 채우지 않았기에 남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줄 수 있다.

그 노신사의 옆자리에 앉아보고 싶었다. 대단한 가르침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살아온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싶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거창하게 물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의 손과 눈빛과 미소를 오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몇 페이지의 경전을 읽은 듯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참으로 깊어진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사람을 만나자마자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가득 찬 항아리는 흔들어도 소리가 크지 않듯, 삶이 깊어진 사람에게는 설명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무엇이 있다.

품격은 말에서 먼저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어떻게 내려놓았는가에서 나온다.

노신사의 은발이 아름다웠던 것도 단순히 머리가 희어서가 아니었다. 세월과 싸우며 흰 것이 아니라 세월과 화해하며 희어진 듯했기 때문이다.

갈색 구두가 빛났던 것도 새것이어서가 아니었다.

오래 신은 것을 정성껏 닦아 신는 사람의 태도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곁에 놓인 《금강경》도 장식처럼 보이지 않았다.

책 속의 문장이 어느새 사람의 표정으로 옮겨 앉은 듯했다.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노년은 어쩌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많이 말하기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 높은 곳에 서기보다 필요한 사람 곁에 앉아주는 사람. 자기 이름을 크게 만들기보다 마음의 자리를 넓히는 사람. 지나간 영광을 꺼내놓기보다 오늘 만난 사람에게 따뜻한 눈빛 하나 건네는 사람. 세월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세월을 잘 놓아준 사람.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은 그렇게 한 노신사의 모습으로 영화 속 벤치에 앉아 있었다.

먼 산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붙잡으려는 것이 없었다. 붙잡는 것이 없었기에 세상 모두를 바라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세월이 더 흘러 머리가 온통 희어지고 걸음이 느려지는 날이 온다면, 그런 모습으로 벤치 하나에 앉을 수 있었으면 한다.

누군가 지나가다 잠시 발걸음을 늦추고 저분 곁에는 한번 앉아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 말을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 삶의 끝으로 갈수록 더 가벼워지고, 가진 것이 줄어들수록 얼굴의 미소는 더 넉넉해지는 사람.

잘 늙는다는 것은 세월을 붙잡는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나갈 것은 지나가게 하고, 머물 것은 잠시 머물게 하며, 떠날 때가 되면 손을 펴주는 일일 것이다.

손을 펴야 바람도 지나간다.

손을 펴야 다른 사람의 손도 잡을 수 있다.

그날 정발산에서 뵌 노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참이나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사람의 마지막 문장은 입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얼굴로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얼굴에 욕심보다 여백이 많고 원망보다 온기가 많고 자랑보다 미소가 많다면

그것만으로도 한 생은 충분히 아름답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

마음은 어디에도 붙잡아 두지 않되 사람에게 내어줄 따뜻한 마음 하나는 끝내 잃지 않는 것.

저렇게 늙을 수 있을까.

그 질문 하나가 한참 마음속 벤치에 앉아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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