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글은 왜 쓰는가 ㅡ청람 김왕식

글은 왜 쓰는가 2026.08.26
글은 왜 쓰는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글은 왜 쓰는가

글은 세상을 이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안쪽에서 자꾸 소란해지는 것을 한참 바라보기 위해 쓴다.

사람은 말로는 너무 빨리 지나간다. 화가 나면 먼저 쏟아내고, 기쁘면 부풀려 말하고, 슬프면 감정이 생각을 앞지른다. 글은 그 성급한 마음의 발목을 붙든다. 한 문장을 쓰는 동안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지우는 동안 한 번 더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글쓰기는 입의 일이 아니라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에 가깝다.

흔히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앎도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쓰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일”이다.

사람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는 것, 아픔을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는 것, 자신의 상처를 칼로 갈아 남에게 겨누지 않는 것, 알지 못하는 일을 아는 체하지 않는 것. 글의 품격은 문장의 높이보다 마음의 절제에서 먼저 드러난다.

글을 쓰다 보면 이상한 순간을 만난다.

처음에는 세상을 말하려고 원고지를 펼쳤는데, 마지막에는 자신이 먼저 심문받고 있는 경우가 생긴다. 누구를 비판하다가 제 안의 같은 허물을 보고, 욕망을 쓰다가 제 탐심을 만나고, 사랑을 말하다가 얼마나 인색하게 살아왔는지 들키기도 한다.

그때 글은 칼이 아니라 거울이 된다.

거울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누구 편도 들지 않는다. 다만 비추어줄 뿐이다. 좋은 글도 그러해야 한다. 독자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는다. 문장을 높은 단상에 세우지도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의 마음 앞에 작은 등불 하나 놓아둘 뿐이다. 그 불빛 아래서 독자가 자기 얼굴을 스스로 바라보게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많이 말하는 일이 아니라 조금씩 덜어내는 일이다.

자랑을 덜고 분노를 덜고 허영을 덜고 확신을 덜고 자기 이름을 덜어낸 자리에 비로소 사람 냄새가 남는다.

문장은 이상하게도 욕심을 많이 얹을수록 무거워지고, 마음을 비울수록 멀리 간다.

그래서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몇 장을 썼다는 뜻만은 아니다. 쓰기 전의 사람과 쓰고 난 뒤의 사람이 조금이라도 달라졌다는 뜻이어야 한다. 미워하던 사람을 조금 덜 미워하게 되고, 쉽게 판단하던 일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당연하게 누리던 하루를 조금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면 그 글은 이미 제 몫을 다한 셈이다.

세상에는 없어도 되는 문장이 너무 많다.

누군가를 눌러야 빛나는 문장 상처를 헤집어 박수를 얻는 문장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해 남의 어깨를 밟는 문장

그런 글은 잠시 시끄러울 수는 있어도 오래 남지 못한다.

한참 남는 글에는 대개 사람을 살리고 싶은 체온이 있다.

글은 사람에게 가기 위해 쓴다. 먼 사람에게 가고 상처 입은 사람에게 가고 한밤중 혼자 앉아 있는 사람에게 가고 아직 만나지 못한 어떤 영혼에게까지 간다.

글쓴이는 그 길의 주인이 아니라 문을 열어주는 사람일 뿐이다.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캄캄한 저녁에 작은 창이 되고 한 편의 글이 오래 닫혀 있던 마음에 의자 하나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글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남기기 위해 쓴다. 책은 언젠가 먼지가 되고 이름도 희미해질 것이다. 끝까지 남는 것은 그 문장을 읽고 한 사람이 조금 따뜻해졌다는 사실

어쩌면 글을 쓰는 까닭은 바로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