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침묵의 품격 ㅡ청람 김왕식

침묵의 품격 2026.08.28
침묵의 품격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침묵의 품격

공자는

흡사 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어눌語訥이라는 말이 있다. 눌訥은 말이 더디고 매끄럽지 못하다는 뜻이다. 상대에게 “어눌하다”라고 말하면 결례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어눌한 제가 한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자신을 한껏 낮추는 謙辭가 된다.

공자의 어눌함도 이와 닮아 있다. 말을 못 해서가 아니라, 말을 아꼈다. 『논어』 에는 군자는 말에는 더디고 행동에는 민첩하고자 한다는 뜻의 ‘눌어언이민어행訥於言而敏於行’이 나온다. 여기서 눌訥은 말재주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입보다 삶을 앞세우겠다는 태도다.

세상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많다. 무엇이든 빨리 판단하고, 무엇이든 쉽게 단정하며, 남의 삶에도 서슴없이 마침표를 찍는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 화살은 주워 들 수 있어도 사람의 가슴에 박힌 말은 다시 거두기 어렵다. 깊은 사람일수록 말이 느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말하기 전에 한 번 생각하고, 생각한 뒤 다시 마음을 살핀다. 그 말속에 가시가 없는지, 허영이 없는지, 누군가를 낮추어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얕은 개울은 돌 하나에도 요란하다. 깊은 강은 수많은 돌을 품고도 제 깊이를 떠들지 않는다.

사람의 말도 그렇다. 생각이 얕을수록 말은 급해지고, 사유가 깊을수록 언어에는 여백이 생긴다. 오늘은 말이 너무 빠른 시대다.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 판단하고, 상대의 마음을 살피기 전에 댓글을 달며, 침묵하면 패배하는 줄 알고 목소리가 크면 옳은 줄 안다.

목소리의 크기와 진실의 크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말의 품격은 유창함에서 오지 않는다. 말하지 않아야 할 때 입을 닫는 절제, 말해야 할 때 책임지는 용기, 상대를 낮추지 않고 자신을 먼저 낮추는 겸허에서 온다.

어눌함의 가장 높은 경지는 말을 못 하는 데 있지 않다. 말을 잘하면서도 다 말하지 않는 데 있다. 알면서도 상대를 몰아붙이지 않고, 옳으면서도 타인의 자존을 짓밟지 않으며, 이길 수 있어도 한마디를 내려놓는 데 있다. 꽃은 향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나무는 제 뿌리의 깊이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향기로 남고, 그늘로 말한다.

사람도 그래야 한다. 말로 자신을 증명하기보다 삶이 먼저 말하게 하는 사람. 많이 말하는 사람보다, 한마디를 책임지는 사람. 공자가 흡사 말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는 것은 말이 모자랐다는 뜻이 아니다.

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끝내 자기 혀의 주인이 되었다는 뜻에 가깝다. 말을 줄인 자리에 비로소 사람이 보인다. 어쩌면 침묵은 말의 부재가 아니라, 말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간 뒤 스스로 내려앉은 자리인지도 모른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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