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갈대가 대나무에게 ㅡ 청람 김왕식

갈대가 대나무에게 2026.08.31
갈대가 대나무에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갈대가 대나무에게

김왕식

너는 마디를 세우며 자라고 나는 물결을 베끼며 늙는다

서로 다른 필체로 한 철의 바람을 받아쓰는 중이다

너의 속은 비어 달빛 한 자루가 드나들고

내 속은 가벼워 강물이 몇 번이고 몸을 바꾼다

사람들은 곧은 것을 절개라 적고 휘는 것을 연약이라 읽지만

폭풍은 글자를 모른다

한 번 크게 지나가고 나면 선 것과 누운 것의 족보도 지워진다

대나무여

네 마디는 상처가 굳은 자리 내 흔들림은 상처를 흘려보낸 자리

누가 더 견뎠는지는 바람도 판결하지 않는다

해 질 무렵 네 그림자가 내 몸에 눕고

내 이삭의 은빛이 네 푸른 마디에 걸릴 때

곧음과 굽음 사이 오래 세워 둔 울타리 하나 무너진다

숲은 서로 닮아서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끝내 다른 채로 한 바람을 통과한 것들의 이름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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