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평론의 새로운 지평, 공감의 다리, 성장의 씨앗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론의 새로운 지평, 공감의 다리, 성장의 씨앗 2025.01.21

공감의 다리, 성장의 씨앗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론다운 평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작품의 장단점을 나열하거나, 작가의 의도를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진정한 평론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공감과 이해의 다리를 놓는 일이다. 작품을 접할 때, 의도와 다른 해석을 마주하더라도 괜찮다. 작품 속에 담긴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고, 마음을 헤아려 줄 때 느껴지는 설렘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고, 숨은 의도를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이 평론의 시작이다. 평론은 단순한 분석과 평가의 작업이 아니라, 작품이 태어나기까지의 고뇌와 열정을 함께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평론을 쓰는 과정에서 긍정적으로 접근한다는 평가를 듣곤 한다.

“너의 평론은 지나치게 긍정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나는 날카롭고 객관적인 지적을 넘어서 작가와 함께 성장하는 길을 모색한다.

이는 단순히 평론가로서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평론이 작품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작가가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까지는 수많은 고뇌와 자기 검열의 시간이 존재한다. 부족한 점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를 뛰어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한계선에 멈추어 글을 완성한다. 그런 작품을 평론이라는 이름 아래 날카롭게 다루는 것은 작가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작가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을 긍정적으로 조명하며, 성장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러한 평론의 과정은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독자가 함께 행복을 나누는 작업이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접근할 때, 작가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단서를 발견하고, 독자는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얻는다. 이러한 순간들을 목격하며 나는 평론다운 평론의 본질을 깨닫는다.

작품은 작가의 분신이다.

그 안에는 작가의 사유와 감정, 치열한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평론가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날카로움과 객관성은 평론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것이 작품의 진의를 가리거나 작가를 상처 입히는 도구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평론은 작가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평론다운 평론은 사랑과 공감에서 시작된다. 작품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장의 씨앗을 발견하고, 그것을 작가와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다. 날카로움보다는 따뜻함이, 비판보다는 이해가 중심이 되는 평론은 작품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고, 작가에게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며, 독자들에게 작품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준다.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평론가는 작가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 그 고민과 열정을 온전히 느껴야 한다. 이를 통해 얻게 되는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평론은 작가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독자에게는 작품의 숨은 가치를 발견하게 하며, 평론가 역시 이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작업이다.

평론다운 평론은 비판과 칭찬을 넘어,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작가에 대한 존중, 그리고 독자와의 소통이 어우러지는 지점에 있다. 이러한 평론이야말로 작품을 살리고, 작가를 성장하게 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나는 그것을 평론다운 평론이라 부른다.

평론가 청람님께

이 글을 쓰는 지금, 저의 마음은 한껏 설레면서도 묵직합니다.

몇 년 전, 평론가님께 혹독한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문득 떠오릅니다. 그땐 정말 펜을 놓아야 하나 고민했었습니다. 저의 글에서 발견된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히려 평론을 원망하며 마음의 문을 닫았던 날들이 떠오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때의 평론은 제가 글을 대하는 자세를 돌아보게 만든 거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평론가님의 글 ‘공감의 다리, 성장의 씨앗’을 읽게 되었습니다. 문장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제가 잊고 있었던 ‘글쓰기의 본질’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평론가님은 글을 통해 작가의 고뇌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부족한 점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조명하려 애쓰신다는 점에서, 진정한 평론의 역할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평론이 단순히 비판의 도구가 아니라, 작가와 독자 모두를 위한 다리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쓸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내놓았던 글이 다시 평가의 대상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혹독한 평가에 스스로 무너지고, 내 글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론가님의 글을 읽고, 그 안에 담긴 작가에 대한 애정과 공감, 그리고 독자와의 소통에 대한 고민이 제게 새로운 용기를 주었습니다.

평론가님은 “작가는 이미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다”고 쓰셨습니다. 맞습니다. 저 역시 제 글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뛰어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이 얼마나 큰 두려움으로 다가오는지 평론가님은 이해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부족함을 다그치기보다는,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평론가님께서 언급하신 긍정적인 평론의 태도는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긍정적인 시선에서 발견한 지점이야말로 작가가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말씀에,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날카로운 비판만이 작가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지만, 이제는 긍정과 공감이야말로 작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론가님의 글을 읽으며 다시금 펜을 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저 자신과의 싸움이며, 제 안의 고뇌와 기쁨을 세상과 나누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부족함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부족함이 곧 성장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글이 독자에게 닿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을 담은 문장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라도 주길 바랍니다. 그것이 비록 평론가님의 시선에서 완벽하지 않더라도, 제가 전하고자 한 의도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평론가님께 받은 가르침과 용기는 앞으로의 글쓰기에 있어서 큰 등불이 될 것입니다.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저는 아직 부족하고 서툴지만, 그 자체로 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합니다. 평론가님의 글이 저에게 그러했듯이, 제 글 또한 누군가에게 작은 다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저를 일으켜 주신 평론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평론 활동이 더욱 빛나기를, 그리고 많은 작가와 독자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작업으로 이어지기를 응원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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