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반려견과 함께하는 행복, 그리고 지나친 집착의 그늘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반려견과 함께하는 행복, 그리고 지나친 집착의 그늘 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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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과 함께하는 행복, 그리고 지나친 집착의 그늘

청람 김왕식

개는 오래전부터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었다. 길고도 깊은 역사 속에서 개는 사냥을 돕고 가축을 지키며 때로는 사람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개는 단순한 동물을 넘어 반려동물로 불리며 가족의 일원처럼 사랑받고 있다. 반려견에 대한 애정이 때로는 지나쳐 본래의 균형을 잃고 극단적인 형태로 변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 진정한 사랑인가, 과시인가?

반려견과 함께하는 삶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하루의 피곤을 잊게 만드는 해맑은 눈망울,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곁을 지켜주는 충성스러운 모습, 그리고 아무런 조건 없이 보내는 무한한 애정은 반려견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다.

이런 사랑이 점차 과시적인 형태로 변질될 때 문제가 생긴다. 과거에는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단순한 농담에 불과했지만, 요즘 들어서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반려견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명품’의 논리가 스며들면서, 반려견을 기르는 행위가 순수한 애정보다는 과시적 소비로 변질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예를 들어 반려견의 생일을 성대하게 치르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반려견의 생일을 챙기는 것은 보호자의 마음이 담긴 애정 표현일 수 있다. 한껏 꾸민 호텔 연회장에서, 수십만 원짜리 강아지 전용 케이크를 앞에 두고, 같은 반려인들이 모여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건배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마치 반려견이 아니라 명망 있는 귀족이라도 된 듯한 착각이 든다.

더욱이 일부 견주는 반려견에게 명품 옷을 입히고, 값비싼 액세서리를 걸어준다. 어떤 보호자는 “우리 애는 고급 브랜드가 아니면 입지 않아요.”라며 당당히 말한다. 강아지는 입는 옷의 브랜드를 인식할 리 없건만, 보호자는 이를 자랑하며 마치 본인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듯하다.

□ 반려견의 안위를 위한 것인가, 견주의 욕망을 위한 것인가

반려견이 보호자의 곁을 잠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방법 또한 흥미롭다. 예전에는 이웃에게 부탁하거나 믿을 만한 지인에게 맡겼지만, 이제는 호텔이 등장했다. ‘펫 호텔’이라는 이름 아래, 일반 호텔 못지않은 시설과 서비스를 갖춘 곳이 성업 중이다.

이곳에서는 반려견이 최고급 침대에서 잠을 자고, 개 전용 마사지 서비스를 받으며, 심지어 VIP 케어를 받는다. 보호자는 출장이나 여행을 떠나면서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 아니, 불안하기는커녕 “우리 애는 호텔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라며 안심하며 여행을 즐긴다. 그러나 정작 반려견이 정말로 이러한 환경을 필요로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반려견을 유모차에 태워 산책하는 모습도 이제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평범한 유모차가 아니라,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 유모차’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급 자동차 브랜드에서 출시한 유모차에 강아지를 태우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면, 이 모든 것이 개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견주의 만족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개는 뛰어놀고 냄새를 맡으며 세상을 탐색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비싼 유모차 안에 갇혀 땅을 밟지도 못한 채 ‘전시’되고 있는 것은 어쩐지 아이러니하다.

□ 반려견과의 이별, 그리고 초현실적 장례 문화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순간이 있다. 오랜 세월 함께했던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견주는 깊은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반려견의 죽음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다. 이별을 대하는 방식이 과연 온당한 수준을 유지하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최근에는 반려견의 장례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장례식장에는 조화가 놓이고, 문상객이 찾아와 애도를 표한다. 장례비용은 수백만 원에 이르고, 일부는 화장을 선택한 후 유골을 목걸이로 만들어 간직하기도 한다. 심지어 문상객이 ‘부조금’을 내는 경우도 있다.

사랑하는 존재를 잃은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반려견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마치 인간의 장례식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극적으로 연출되는 모습은 과연 적절한 것일까? 개는 인간처럼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으며, 인간이 하는 방식대로 애도받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반려견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소비적으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 반려견과의 관계,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며

반려견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준다. 무조건적인 사랑, 충성심, 그리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순수한 시선. 하지만 인간은 반려견을 대하는 방식에서 종종 ‘소유욕’과 ‘과시욕’을 섞어버린다. 반려견을 향한 애정이 단순한 소비문화로 변질되는 순간, 그것은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를 만족시키려는 행위로 변한다.

정말로 반려견을 사랑한다면, 비싼 옷과 유모차, 호텔과 장례식을 고려하기 전에 그들의 본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개는 바깥을 뛰어다니고, 흙냄새를 맡으며, 보호자의 곁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반려견을 위한 최고의 선물은 명품이 아니라, 함께하는 시간과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반려견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반려견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것인가? 그 답은 아마도, 반려견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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