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보 작가의 '동화는 세상을 구제할 희망이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용보 작가의 '동화는 세상을 구제할 희망이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05.08
김용보 작가의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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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는 세상을 구제할 희망이다
동화작가 김용보
어느 날 문득, 나는 오래된 이야기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종이에서는 먼지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났다.
그 속엔 울던 아이가 웃고 있었고, 미움받던 이가 용서를 받았으며,
길 잃은 자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동화는 결코 어린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며,
이 세계를 다시 따뜻하게 감싸안는, 오래된 미래라는 것을.
나는 이 시대에 묻고 싶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가.
아이들은 더 이상 나무 위에 올라가 놀지 않고,
어른들은 더 이상 아이들에게 눈을 맞추지 않는다.
뉴스는 날마다 새로운 사건을 말하지만,
우리가 진짜 잊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에 닿기 위해, 나는 동화를 쓴다.
동화는 거짓말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솔직한 이야기다.
어느 착한 사람이 착하게 살다 결국 웃고,
한 번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며,
작은 친절이 커다란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
이 단순하고도 선명한 진실을,
사람들은 ‘동화적’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이 지구가 잃어버린 언어라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일어나고, 혐오가 퍼지고, 눈물이 마른다.
그 속에서 나는 묻는다.
“이럴 때, 동화가 무슨 소용이냐”고.
그러나 나는 더욱 확신한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한 권의 동화, 한 줄의 위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시간이라고.
동화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
가난한 아이도, 말 없는 노인도,
지나치기 쉬운 이웃도 모두 동화 속 주인공이 된다.
그 누구도 비교하지 않고,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게 하는 이야기.
그것이 내가 쓰는 동화이며,
그것이 이 세상을 지켜내는 작은 불씨다.
나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 마음을 향해, 나는 동화라는 작은 배를 띄운다.
종이로 접은 조각배처럼 약해 보이지만,
그 배는 바다를 건넌다.
눈물 위를, 절망 위를, 상처 위를 조용히 지나
결국 사람의 마음 한가운데 도착한다.
나는 이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동화는 세상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구할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릴 수 있다면,
그 변화는 결국 세상을 구제하는 파도가 될 것이다.
내가 꿈꾸는 동화는
오래된 슬픔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말없이 다가가
등을 토닥이는 손이고,
세상이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한 사람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언어다.
이제 나는 말하고 싶다.
동화는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부터 다시 시작될 사람의 기록이다.
이 세계가 점점 차가워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동화를 필요로 한다.
동화는 세상을 구제할 수 있다.
아니,
동화만이, 아직 구제되지 않은 이 세계를
다시 사람의 품으로 데려올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희망의 첫 문장을 오늘도 적어내려 간다.
■
이야기의 등을 토닥이는 손,
그 이름 김용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용보 작가의 동화는 종이 위에 눕힌 상상이 아니다.
그것은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희망의 폐허 위에 다시 숨을 불어넣는,
침묵 끝의 첫 문장이다.
그는 말하지 않은 자들의 곁에 앉아, 오래 닫혀 있던 이야기의 등을 조용히 토닥인다.
그 손은 유난히 따뜻하다.
왜냐하면, 그 손 안에는 작가가 살아낸 생의 체온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화는 세상을 구제할 희망이다’라는 문장은 선언이 아니라 고백이다.
이 고백은 오랜 시간 땀과 눈물로 반죽한 인간의 진심에서 비롯된다.
그는 거대한 시스템과 이념의 언어를 거부한다.
그 대신, ‘한 사람’의 얼굴,
그 작은 숨결에 천천히 귀 기울인다.
김용보에게 동화는 대상을 가르치는 지혜가 아니라,
함께 우는 언어이며, 돌아보게 하는 윤리다.
그의 삶의 가치철학은 “되면 한다”는 다섯 글자에 농축되어 있다.
그 말은 실패를 허락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는 믿음의 변주다.
그는 꿈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기획된 진심”을 한 줄씩 써내려간다.
이것이야말로 김용보 문학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동화의 형식을 빌려, 사람의 마음을 세상에 다시 번역하는 일.
그의 미의식은 대단히 절제되어 있다.
비극을 과장하지 않고, 희망을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그는 잊힌 존재들을 다시 등장시키되,
그들의 눈빛과 손끝 하나하나를 존중하며 이야기를 직조한다.
이 서사의 방식은,
단단한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봄꽃 같다.
눈보라를 견뎌낸 이야기만이 품을 수 있는 단아한 향기.
그는 ‘끝’이라 쓰인 문장 옆에, 조용히 쉼표 하나를 찍는다.
그리고 그 뒤에 말을 덧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계속된다”고.
그의 동화는 상처 난 시간 위에 붙이는
가만한 연고이자,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작은 마중물이다.
김용보의 문장은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이 깊은 울림이 된다.
그 울림은 전 세계 어디든 닿는다.
아이의 무릎 위에도, 지친 노동자의 가슴팍에도,
늙은 어머니의 주름진 손등 위에도.
동화는 결국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오래된 다정함이다.
김용보는 그 다정함을 기억하는 마지막 이야기꾼이며,
그 다정함으로 세상을 견디게 하는 첫 번째 작가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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