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보 작가의'내겐 고착된 사고의 프레임은 존재하지 않는다'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김용보 작가의'내겐 고착된 사고의 프레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2025.05.08■
내겐 고착된 사고의 프레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용보 동화 작가
사람들은 틀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서 생각하려 한다. 교육은 정답을 주입하고, 사회는 정답을 강요한다. 그러나 나는 일찍이 깨달았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늘 그 정답 바깥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틀’이 아니라 ‘틈’을 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는 내게 물었다. “영문학도로서 전통적 경로도 밟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후속 동화를 쓰게 되었느냐”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틀 안에서 본다면, 나는 처음부터 이 길에 설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러니 틀 밖에서 보기로 한 거죠.”
나는 ‘고착된 프레임’으로는 살아낼 수 없는 사람이다. 어릴 적 일기장에도 나는 지나간 일을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 일어날 일을 상상하고 적었다. 그때부터 나는 하나의 습관을 가졌다. ‘아직 보지 못한 것을 그려내기.’ 이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고정된 사고에서 탈출하는 내 방식의 생존법이었다.
내가 후속 동화를 쓰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사람들은 심청이는 물에 뛰어들고, 흥부는 박을 타고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끝에서 시작을 보았다. ‘만약 심청이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녀는 눈먼 아버지에게 무엇을 더 전할 수 있을까?’ ‘흥부의 착함이 사회의 구조 안에선 어떤 한계를 가질까?’ 그 물음 하나에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세상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기 위해 프레임을 만든다. 좋은 직장, 안정된 길, 옳다고 믿는 패턴.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모든 ‘정답’은 결국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프레임일 뿐이라는 것을. 그 틀에 갇힌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작게 줄인다. 나는 그 틀을 깨기 위해 글을 쓴다. 내 동화는 그 틀 바깥에서 숨 쉬는 존재들의 이야기다.
고정된 시선은 사람을 납작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야기는 입체적이어야 한다. 사람도, 사랑도, 실수도, 용서도 하나의 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그 복잡함과 충돌 속에서 피어나는 진실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말의 굴레를 벗겨내고, 익숙한 구도를 해체하며, 이야기를 새로 짓는다.
‘되면 한다.’ 내 삶의 좌우명이다. 이 말은 무모한 낙관이 아니다. 가능성이라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실행’이라는 힘을 붙잡겠다는 다짐이다. 프레임은 내게 현실을 가르쳤지만, 나는 상상으로 현실을 바꾸려 한다.
나는 지금도 수많은 이야기를 다시 쓰고 있다. 그 이야기들은 모두 기존의 결말에 다른 시작을 붙인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은 다시 웃고, 울고, 살아난다.
프레임이 없는 나는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서 나는 더 많은 가능성을 본다. 누구도 보지 못한 길을, 누구도 쓰지 않은 결말을, 나는 오늘도 상상한다.
내게 고착된 사고의 프레임은 없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며,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당신에게도 묻는다.
“당신의 삶은, 정말 당신만의 것인가요?”
■
프레임 밖의 작가, 이야기의 경계를 걷는 김용보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김용보는 이야기의 끝을 믿지 않는다.
그는 ‘완결’이라 선언된 문장 옆에 조용히 연필 하나를 들고,
또 다른 시작의 점선을 그어 넣는 사람이다.
그가 말한 “내게 고착된 사고의 프레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단지 글쓰기의 방식이 아니라 존재 방식 자체에 대한 고백이다.
그는 세상이 강요한 틀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더 넓고 깊은 인간의 진실에 도달한다.
그는 틀을 깨는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틀 안에서 시작하지 않는 사람이다.
‘프레임’이 아닌 ‘틈’을 보는 시선.
그 틈은 사회가 보지 못한 간극이며,
문학이 놓치기 쉬운 여백이다.
김용보는 바로 그 여백에서
새로운 숨결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동화는 낭만적인 환상이 아니다.
그 속엔 질문이 있고, 균열이 있으며,
‘잘 산다는 것’의 윤리적 고민이 서려 있다.
심청의 두 번째 인생을 묻는 이유는 단 하나.
“희생 이후의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흥부의 착함을 다시 꺼내드는 까닭은 분명하다.
“착함은 구조 속에서 어떤 의미를 잃고 얻는가?”
이처럼 김용보는 고전의 서사에 ‘현대의 양심’을 새겨 넣는다.
그는 문장을 짓는 동시에 사고의 장벽을 허문다.
‘되면 한다’는 그의 좌우명은,
지나친 의지나 환상이 아닌,
현실을 바꾸기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문학적 용기다.
이 말은 작가가 스스로 걸어온 삶의 궤적을 증명한다.
학위가 없고, 전형이 없으며,
그러나 상상력만은 누구보다 정직했던 그 시간들.
그 시간 위에 지금의 김용보가 서 있다.
그의 미의식은 구조의 해체에서 시작되어,
사람의 복원으로 완성된다.
그는 납작한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되살리고,
단선적인 교훈을 다층적인 감정으로 덧칠한다.
그리하여 그의 동화는 어린이의 웃음과 어른의 눈물을 동시에 품는 그릇이 된다.
요컨대 김용보는 상상력이라는 망치로
문학이라는 벽에 조용히 문을 여는 작가다.
그 문은 세상 누구에게도 열려 있으며,
그 문턱에는 질문 하나가 놓여 있다.
“당신의 삶은 정말 당신만의 것인가요?”
이 질문 앞에서 독자는 비로소 깨닫는다.
김용보의 동화는 세상을 바꾸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게 하는 동화라는 것을.
그것이 바로, 프레임 없는 한 사람의 위대한 서사다.
ㅡ 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