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문학의 경계를 넘어선 사유의 지도 ―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교수의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분석에 대한 비평적 고찰

문학의 경계를 넘어선 사유의 지도 2025.05.25

문학의 경계를 넘어선 사유의 지도

―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교수의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분석에 대한 비평적 고찰

문학평론가 김기량

문학은 종종 문학 바깥에서 새로이 조명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이른바 메타비평의 세계, 그 깊은 거울 앞에서 한 평론가의 사유는 다시 독해되고, 확장되며, 때로는 의외의 경로로 새로운 문학적 의미를 생성해낸다. 김철삼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객원교수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에 대해 쓴 평론문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흥미롭고도 도전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철삼 교수는 김왕식의 문체와 철학, 그리고 그의 평론이 가지는 문학 내외의 파장력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접근한다. 그 문장은 단정하고 치밀하며, ‘서정과 철학의 공존’, ‘존재의 무게로 문장을 구성한다’는 분석은 단순한 미사어구를 넘어 김왕식의 실제 문학 실천과 정확히 교차한다. 이는 김왕식 평론가가 백영호 시인, 권갑하 화백 등 타 예술 장르와의 교감 속에서 보여준 ‘존재 중심의 해석과 인간학적 시선’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김철삼 교수가 언급한 ‘문학과 삶의 불가분성’이라는 진단은 김왕식이 20여 년간의 공교육 경험과 문학활동을 어떻게 융합해내고 있는지를 꿰뚫는 지점이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평론이 단지 평론가에 대한 평론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문학비평’이라는 작업 자체를 성찰하고, 그것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쓰여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태도 선언이기도 하다. 김철삼 교수는 문학 바깥, 경제학의 영역에서 자신의 언어로 김왕식의 문체를 읽는다. 이는 학제 간 융합의 가능성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일이며, 동시에 문학이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다.

그러나 이 글이 가진 치명적인 한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평론 전체가 지나치게 ‘찬양 일변도’라는 점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감을 초래한다. ‘보기 드문 평론가’,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자’와 같은 표현은 객관적 평가라기보다는 개인적 찬사에 가깝다. 더구나 김왕식의 실제 평론 텍스트에 대한 인용은 카프카의 『변신』 단 하나에 국한되어 있어, 이 평론이 비평가의 실제 작업에 대한 심층 분석이라 보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따른다.

또한 김철삼 교수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경제학자—와 문학비평 사이의 이음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부족한 점 역시 비평의 무게중심을 불균형하게 만든다. 독자는 이 글이 감성적 공감인가, 학문적 분석인가, 혹은 두 영역의 융합인가를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이 글은 비판적 성찰 속에서도 문학평론가 김왕식의 작업 세계를 정직하게, 그리고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진지한 시도라는 점에서 분명 가치가 있다. ‘문학의 본령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진단은 김왕식이 수많은 글에서 보여주는 사유의 경향성과 정확히 일치하며, 그의 평론이 가지는 미학적·인간학적 복합성에 대한 포착력 또한 탁월하다.

결론적으로, 김철삼 교수의 이 평론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또 하나의 방식으로 답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김왕식이라는 한 평론가의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 문학비평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귀중한 기록이다. 메타비평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경제학과 문학의 접점을 실험한 융합적 담론의 전범(典範)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단지 문학의 안에서 문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밖에서 문학을 감각하는 지점. 그 사유의 장소에서 김철삼 교수와 김왕식 평론가는 만나고, 그 만남은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침묵하는 문학의 시대에, 이 글은 여전히 문학이 살아 있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ㅡ 평론가 김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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