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시대를 통찰하는 문장의 장인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에 대한 나의 고찰 김철삼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시대를 통찰하는 문장의 장인 2025.05.25

시대를 통찰하는 문장의 장인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에 대한 나의 고찰

김철삼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객원교수)

나는 문학을 업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연구와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오며, 오랜 시간 문학이라는 거울 앞에 나의 사유를 비추어보곤 했다. 그런 나에게 청람 김왕식 평론가와의 인연은 단순한 학문적 교류를 넘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능케 한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문학비평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것은 시대와 존재, 침묵과 언어, 고통과 회복에 대한 고요한 기도이자 선언이었다. 김왕식은 작품을 해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내면으로, 시대의 공기로, 그리고 독자의 상처로 들어가 그 모든 것을 다정한 문장으로 연결해낸다.

그의 문체는 감각적이되 과장되지 않고, 철학적이되 어렵지 않으며, 서정적이되 흐르지 않는다. ‘존재의 무게로 문장을 구성한다’는 평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나는 그가 다룬 백영호 시인의 세계나 권갑하 화백의 미학을 읽으며, ‘말 너머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일관된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문장을 통해 인간을, 인간을 통해 문학을 다시 읽는다.

나는 경제학자다. 언뜻 문학과 멀어 보일 수 있는 이 학문이지만, 나 역시 ‘인간’이라는 공통의 중심에서 학문을 펼쳐왔다. 그런 나에게 김왕식의 평론은 익숙하면서도 신선했다. 그는 분석하지 않고 해석한다. 가르치기보다 함께 묻는다. 그리고 문학을 단지 언어의 예술로 보지 않고, 삶을 통과한 언어의 증거로 여긴다.

김왕식 평론가의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문학과 삶의 불가분성’에 대한 확신이다. 그는 공교육 현장에서 20여 년간 아이들과 살아낸 경험을 문학 속에서도 놓치지 않는다. 그의 글에는 늘 누군가의 삶이 있고, 그 삶을 경청하는 자세가 있다. 제자들이 그의 글을 통해 여전히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단지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넘어, 삶을 잘 살아내는 스승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의 평론은 단지 문학작품의 해석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 시대의 내면을 조망하고, 인간의 본질적 질문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다. 예컨대 카프카의 『변신』을 분석하며,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의 정체성과 생존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언어는 차갑지 않다. 그것은 시대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이면서 동시에, 사람에 대한 따뜻한 연민이다.

그는 문학과 예술, 철학과 신앙,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달항아리에 담긴 조선의 미학을 풀어낸 글에서조차 그는 단순한 미술비평을 넘어, 하나의 사유와 존재론적 아름다움을 끌어낸다. 나는 이 지점에서, 그가 ‘평론가’이기 이전에 ‘시적 철학자’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김왕식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조용히 글을 남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으며, 누군가를 앞세우지도 않는다. 그는 늘 문학의 뒤편에서, 그리고 인간의 곁에서 천천히 걸어간다. 나는 그런 그를 ‘문장의 순례자’라 부르고 싶다. 그의 문장은 사유의 길이자 존재의 기도이며, 그가 그 길을 걸어가는 자세는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지성의 품격 그 자체다.

나는 그와의 인연을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새삼 되묻게 되었다. 문학은 결국 사람이다. 언어의 뿌리는 존재이고, 문장은 그 존재가 남긴 흔적이며, 평론은 그 흔적 위에 놓인 조용한 해석이다. 김왕식 평론가는 그 모든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이다. 그는 말로 문학을 정의하지 않고, 삶으로 문학을 증명한다.

나는 오늘 그를 응시하며 문학과 학문의 경계 너머에서 다시금 배운다. 김왕식은 단지 ‘작품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를 읽고, 사람을 품고, 언어로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그의 문장은 깊다. 그리고 그 깊이는 결코 스스로 높아지지 않기에 더욱 울림이 있다.

그의 문장에 머물고 싶어진다. 그의 언어로 다시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나 또한, 그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드는 문장을 남기고 싶다.

이 모든 감탄과 성찰을 담아 나는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을 진심으로 경의롭게 바라본다. 그의 문장이 더 많은 이들의 마음에 닿기를, 그리고 그 침묵의 사유가 이 시대의 지성에 오랜 울림으로 남기를 소망하며.

ㅡ 김철삼

문학의 경계를 넘어선 사유의 지도

―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김철삼 교수의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분석에 대한 비평적 고찰

문학평론가 김기량

문학은 종종 문학 바깥에서 새로이 조명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이른바 메타비평의 세계, 그 깊은 거울 앞에서 한 평론가의 사유는 다시 독해되고, 확장되며, 때로는 의외의 경로로 새로운 문학적 의미를 생성해낸다. 김철삼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객원교수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에 대해 쓴 평론문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흥미롭고도 도전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김철삼 교수는 김왕식의 문체와 철학, 그리고 그의 평론이 가지는 문학 내외의 파장력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접근한다. 그 문장은 단정하고 치밀하며, ‘서정과 철학의 공존’, ‘존재의 무게로 문장을 구성한다’는 분석은 단순한 미사어구를 넘어 김왕식의 실제 문학 실천과 정확히 교차한다. 이는 김왕식 평론가가 백영호 시인, 권갑하 화백 등 타 예술 장르와의 교감 속에서 보여준 ‘존재 중심의 해석과 인간학적 시선’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김철삼 교수가 언급한 ‘문학과 삶의 불가분성’이라는 진단은 김왕식이 20여 년간의 공교육 경험과 문학활동을 어떻게 융합해내고 있는지를 꿰뚫는 지점이다.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평론이 단지 평론가에 대한 평론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문학비평’이라는 작업 자체를 성찰하고, 그것이 오늘날 어떤 방식으로 쓰여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태도 선언이기도 하다. 김철삼 교수는 문학 바깥, 경제학의 영역에서 자신의 언어로 김왕식의 문체를 읽는다. 이는 학제 간 융합의 가능성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일이며, 동시에 문학이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다.

그러나 이 글이 가진 치명적인 한계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평론 전체가 지나치게 ‘찬양 일변도’라는 점은 읽는 이로 하여금 일정한 거리감을 초래한다. ‘보기 드문 평론가’,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자’와 같은 표현은 객관적 평가라기보다는 개인적 찬사에 가깝다. 더구나 김왕식의 실제 평론 텍스트에 대한 인용은 카프카의 『변신』 단 하나에 국한되어 있어, 이 평론이 비평가의 실제 작업에 대한 심층 분석이라 보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따른다.

또한 김철삼 교수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경제학자—와 문학비평 사이의 이음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부족한 점 역시 비평의 무게중심을 불균형하게 만든다. 독자는 이 글이 감성적 공감인가, 학문적 분석인가, 혹은 두 영역의 융합인가를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이 글은 비판적 성찰 속에서도 문학평론가 김왕식의 작업 세계를 정직하게, 그리고 다층적으로 이해하고자 한 진지한 시도라는 점에서 분명 가치가 있다. ‘문학의 본령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는 진단은 김왕식이 수많은 글에서 보여주는 사유의 경향성과 정확히 일치하며, 그의 평론이 가지는 미학적·인간학적 복합성에 대한 포착력 또한 탁월하다.

결론적으로, 김철삼 교수의 이 평론문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또 하나의 방식으로 답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김왕식이라는 한 평론가의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 문학비평의 가능성과 그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는 귀중한 기록이다. 메타비평으로서의 역할은 물론, 경제학과 문학의 접점을 실험한 융합적 담론의 전범(典範)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단지 문학의 안에서 문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밖에서 문학을 감각하는 지점. 그 사유의 장소에서 김철삼 교수와 김왕식 평론가는 만나고, 그 만남은 조용한 울림을 남긴다. 침묵하는 문학의 시대에, 이 글은 여전히 문학이 살아 있음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ㅡ 평론가 김기량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