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내 친구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ㅡ 새벽을 깨우는 남자 자연인 안최호

내 친구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ㅡ 새벽을 깨우는 남자 자연인 안최호 2025.05.25
내 친구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ㅡ  새벽을 깨우는 남자 자연인 안최호

자연인 안최호

내 친구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자연인 안최호

인생길을 오래 걷다 보면, 끝내 변하지 않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문득 삶의 중심을 다시 잡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 내게 있어 그 이름은 김왕식이다. 50여 년 전, 경기도 광주의 작은 중학교 교정에서 처음 만난 그는 이미 또래와는 다른 빛을 품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강단 있었고, 말이 적지만 눈빛은 언제나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식이는 공부를 잘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성적이 아니라, 앎에 대한 진실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의 가방 속에는 언제나 낡은 문학책 한 권이 있었고, 쉬는 시간에도 그는 늘 벤치 끝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한 줄을 더 읽고자 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있던 그는 중학교 2학년 무렵, 더 넓은 배움터를 찾아 서울로 전학을 떠났다. 그 길은 우리에게 이별이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반드시 큰 길을 걷게 되리라는 것을.

세월이 흘러, 그는 정말 그렇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평북 정주에서 남강 이승훈 선생이 1907년 설립한 118년 전통의 명문 민족사학 서울 오산고에서 국어교사로 첫 발을 내딛은 그는, 백석과 소월, 춘원 이광수의 정신을 이어받아 문학을 가르쳤다. 그 교단 위에서 그는 지식을 가르치는 스승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는 안내자였다. 아이들에게 문장을 넘어 사람을 가르쳤고, 그 가르침은 교실 너머까지 스며들었다.

20여 년을 근무한 그는 실력을 인정 받아 교육 방송업계로 스카웃되어, 전국 경찰대와 사관학교 , 교육대 ㆍ사범대 지망생 사이에서 ‘1타 강사’로 문학과 논리의 탁월한 해설자로 우뚝 섰다. 그의 강의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었다. 삶을 꿰뚫는 언어, 사유를 이끄는 문장으로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여러 대학의 초청을 받아 문학과 논리수사학을 가르쳤으며, 신학대학원에서는 신앙과 이성을 아우르는 독보적인 교수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명처럼 교육의 씨앗을 더 넓은 땅에 뿌리기 시작했다. 도서출판 ‘청람서루’를 세워 수많은 문학작품과 평론서를 출간하고, 20년 넘게 ‘청람영재학교’를 운영하며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그 교육 철학은 단순한 엘리트 양성을 넘어서, 사람다운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교장이 아니라 한 사람의 벗으로, 선생으로, 어른으로 늘 아이들 곁에 있었다.

동시에 그는 언론사 ‘오케이뉴스’에서 기자로도 활동하며, 시대를 성찰하고 문학의 공공성을 실천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여정을 집대성하듯, ‘청람문학회’를 설립했다. 청람문학회는 단지 글을 쓰는 모임이 아니다.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언어를 듣고, 문학을 통해 다시 사람을 만나는 공동체다. 그곳에는 위계도, 경쟁도 없고 오직 존중과 진심만이 흐른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내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왕식이는 달라진 적이 없다. 50여 년 전 중학교 교정에서 만난 그 모습 그대로, 그는 지금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따뜻하게 사람을 품고 있다.

그의 평론은 작가의 결함을 지적하기보다, 그 속에 감춰진 가능성을 끌어올린다. 단점을 덮는 것이 아니라, 그 단점 너머의 고통과 진심을 읽어주는 글. 작가는 그 평론을 읽으며 눈시울을 붉히고, 다시 펜을 든다. “그래, 다시 써보자.” 그의 글은 그렇게 사람을 일으킨다. 나는 그런 글을 ‘등불 같은 문장’이라 부르고 싶다.

왕식이는 내게 자랑스러운 친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에게서 배운 삶의 태도다. 그는 늘 말한다. “사람은 글보다 크다. 문장은 사람을 품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평론가, 시인, 교육가라 부르기보다, 그냥 ‘사람다운 사람’이라 부르고 싶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와 차 한 잔을 나누며 옛이야기를 꺼낸다. 그는 웃고, 나는 듣는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인생에 단 한 명의 친구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김왕식.”

그 이름 앞에 나는 늘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나는 안다. 그는 지금도, 나와 함께 여전히 ‘길 위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그의 문장은 사람을 안고, 그의 삶은 문장을 이끈다. 청람 김왕식, 그는 나의 친구이자, 이 시대 가장 고운 문장의 주인이다.

장심리에서 새벽을 깨우는 남자

자연인 최호 안길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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