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과 삶 사이의 다리를 놓는 평론가 ㅡ새벽을 깨우는 남자 자연인 트럭운전사 안최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학과 삶 사이의 다리를 놓는 평론가 ㅡ새벽을 깨우는 남자 자연인 트럭운전사 안최호 2025.05.26
자연인 안최호 작가
청람 김왕식, 문학과 삶 사이의 다리를 놓는 평론가
자연인 안최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은 단지 작품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시인과 독자 사이를 오가며 언어의 다리를 놓는 해석자이다. 그의 평론은 단순한 비평이 아니라, 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 깃든 인간의 삶과 존재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진중한 사유의 산물이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문득 고개를 들고, 내 삶 또한 하나의 시였는가를 되묻게 된다. 김왕식의 평론은 시를 시로만 읽지 않는다. 그는 시 안에 숨은 ‘살아낸 시간’에 주목하고, 그 시간을 견디고 빚어낸 이의 내면을 향해 고개 숙인다. 그래서 그의 평론은 감상문이 아니라 해석이요, 감각이 아니라 철학이 된다.
김왕식은 절제된 언어의 미학을 아는 사람이다. 과장도, 수식도 없이 꼭 필요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히 울림을 전한다. 그의 글은 ‘말을 아끼는 자의 품격’을 지녔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은 오히려 문학의 본질에 더 깊이 다가서게 하고, 독자 또한 작가의 내면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그의 문장은 시인의 언어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정제된 언어로 조용히 비추는 등불이 된다.
그는 평론가로서 시의 예술성보다 ‘사람’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시가 화려해도, 거기에 인간의 숨결이 없다면 그는 매섭게 질문을 던진다. 반대로 언뜻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시라도, 그 속에 인간의 고통과 사랑, 치열한 진심이 배어 있다면, 그는 그것을 꿰뚫어 보고 따뜻한 격려를 건넨다.
김왕식은 일상을 사랑하는 평론가다. 그는 시가 하늘 위에 떠 있는 낭만이 아니라, 발밑의 흙과 먼지 속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늘 낮은 곳으로 향한다. 논두렁, 버스정류장, 시골장터, 도시의 뒷골목 같은 일상의 풍경 속에서 시인의 시선을 찾아내고, 거기 담긴 인간적인 감정을 퍼올린다. 그는 시의 형식이나 기교보다, 그 안에 깃든 진정성과 삶의 윤기를 더 중시한다.
또한 그는 평론을 통해 독자와 작가를 이어준다. 시인의 문장을 읽는 사람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며, “이 시는 이런 마음으로 쓰인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과 닮지 않았나요?”라고 조용히 묻는다. 그러면 독자는 놀라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삶이 문득 그 시와 닿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평론은 설명이 아니라 공감이고, 평가가 아니라 대화다.
그의 글은 비평이라기보다 문학과 인간을 향한 ‘예의’다. 시인을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시를 제대로 읽고 가늠하며, 그 안에 있는 고통과 아름다움을 함께 짊어지는 겸허한 동행자의 모습을 지녔다. 그는 문학이라는 언어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이정표이자, 독자에게는 문학의 문턱을 낮춰주는 친절한 해설자이다.
청람 김왕식은 그래서 ‘사색하는 평론가’다. 그는 시를 읽고 사유하고, 그 사유를 언어로 새기되, 결코 독자를 놓치지 않는다. 그는 시와 사람 사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시 문학의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그의 평론이 깊고 넓은 이유는, 문학만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존중과 통찰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많은 문학평론가들이 있지만, 청람 김왕식의 글이 특별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는 문학을 삶으로, 삶을 다시 문학으로 환원시키며,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을 살핀다. 그리고 그 마음 위에, 고요하지만 확실한 물결 하나를 남긴다.
청람 김왕식, 그는 평론을 빌려 인생을 읽고, 사람을 이야기하는 가장 따뜻한 해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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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우는 남자
자연인 트럭운전사 안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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