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정신적 사물화(mental objectification)를 시도한 작품 ㅡ 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신적 사물화(mental objectification)를 시도한 작품 ㅡ 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 2025.06.18
정신적 사물화(mental objectification)를 시도한 작품 ㅡ 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

정신적 사물화(mental objectification)를 시도한 작품

유리 심장을 가진 여인

그녀는 심장을 꺼내 벽난로 위에 두었다.

바로 그 벽난로, 불이 붙지 않는, 백 년 가까이 재만 쌓인 그곳.

그녀의 심장은 유리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장식품이라 불렀고,

그녀는 그 오해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심장은 실제로 유리였고, 그 안에는 매일매일의 감정이 수증기처럼 맺혔다.

기쁨은 안쪽에서 맺히는 노란 물방울이었고,

슬픔은 바깥으로 번지는 푸른 균열이었다.

사랑은 가끔 핏빛으로 일렁였지만, 그건 금세 갈라졌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 그것을 천으로 닦았다.

그러면 과거가 흐릿해졌고, 미래는 조금 투명해졌다.

그녀의 연인은 이 사실을 몰랐다.

그는 단지 그녀가 ‘감정이 없는 여자’라 생각했다.

그녀는 욕조에서 목욕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물속에서는 그녀의 몸에서 불쑥 꽃이 자라기 때문이었다.

한 번은 복숭아꽃이 어깨에서 피어났고,

또 한 번은 백일홍이 등뼈를 타고 올라왔다.

그것들은 향기롭고 예뻤지만, 너무 빨리 시들었다.

그녀는 꽃이 피는 걸 두려워했다.

피어난다는 건 시든다는 전제에서 시작되는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밤이면 그녀는 귀에서 나는 달의 쥐긁는 소리를 들었다.

그건 달빛이 그녀의 과거를 벗기듯 파내는 소리였다.

가끔은 그 소리에 견디지 못해 창문을 깨뜨렸다.

그러면 창문 유리 조각 속에 그녀의 어린 시절이 깃든 얼굴이 비쳤다.

눈동자는 없고, 입은 ‘미안해’만 반복하는 입모양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신 안의 슬픔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개념 자체가 그녀의 육체를 빌려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충격이었다.

그녀는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임대자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기 몸을 감정들에게 세 놓기 시작했다.

분노는 등뼈 아래 방을 원했다.

질투는 양쪽 손바닥을 원했다.

절망은 발가락 끝에 눌러 살며

사랑은 혀끝에 살며 때때로 말을 빌려 이별을 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공간’이라 여겼다.

감정의, 기억의, 사물의 공간.

그러던 어느 겨울,

그녀는 유리 심장을 벽난로에서 꺼내 깨뜨렸다.

그 순간, 심장은 조각나지 않았다.

대신, 그 방 전체가 산산이 부서졌다.

천장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벽은 노래하듯 무너졌다.

오로지 그녀만 남았다.

허공에 떠 있는 하나의 반점처럼.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존재하는 것처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입가에는 처음 보는 감정의 이름도 모를 미소가 걸려 있었다.

ㅡ 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