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람 김왕식 작가의 '광한루'를 문학평론가 김기량 평하다
청람 김왕식 작가의 '광한루'를 문학평론가 김기량 평하다 2025.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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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한루
청람 김왕식
광한루 누각에 오른다
바람이 옷깃을 쓰다듬고
햇살은 기왓장 위에 눕는다
잠시 세상이 고요해진다
평화는 물결처럼 다가온다
이곳을 스쳐간 이름들
황희의 무게와 송강의 시심이
기둥에 스며 있다
산천은 말이 없고
사람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연못 가장자리,
잉어가 꿈을 꾼다
비늘마다 세월이 반짝이고
수면 아래엔 전설이 흐른다
저기 25살 여대생 하나
청아한 목소리로 사랑가를 부른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로구나
그 소리에 하늘도 고개를 기울이고
세상 시름은 연못에 녹아내린다
성춘향과 이몽룡,
그들의 숨결은 아직 이곳을 맴돈다
월매의 마루, 오작교의 그림자
지금도 달빛은
사랑을 짓고 있다
광한루, 그 이름 아래
사랑은 오래도록 머무른다
사람이 가고
노래는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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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누각에서 사랑을 짓다
― 청람 김왕식의 ‘광한루’
문학평론가 김기람
청람 김왕식의 시 ‘광한루’는 단순한 정경 묘사를 넘어, 공간이 품은 시간과 사람, 그리고 사랑의 본질을 정제된 언어로 펼쳐낸 서정적 묵상이다. 시인은 전통의 숨결과 현대의 감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고색창연한 누각 위에 인간 존재와 기억, 그리고 예술의 본령을 아로새긴다.
첫 연은 누각에 오르는 행위를 통해 시적 주체의 내면 풍경을 여는 문이다. “바람이 옷깃을 쓰다듬고 / 햇살은 기왓장 위에 눕는다”는 표현은 시인의 섬세한 감각과 고요의 미학을 드러낸다. 이때 바람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지나온 세월과 맞닿은 역사적 체취이며, 햇살은 그 위에 잠든 기억의 형상이다. “평화는 물결처럼 다가온다”는 구절은 단단한 내면의 성숙에서 우러나온 한줄기 평온으로, 청람 문학이 추구하는 ‘조화로운 삶의 감각’이 은유되어 있다.
이어지는 연에서는 광한루가 단지 한 곳의 누각이 아니라, 수많은 인물의 기억이 층층이 쌓인 ‘시간의 전당’임을 드러낸다. “황희의 무게와 송강의 시심이 / 기둥에 스며 있다”는 시구는 인물의 존재가 자연에 동화되고, 시대가 그 자체로 공간에 휘감긴다는 청람 시인의 역사인식과 미의식을 보여준다. ‘산천은 말이 없고 / 사람은 바람처럼 사라졌다’는 후반부에서는, 존재의 무상함 속에서도 자연과 기억은 오히려 더 견고하게 남는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세 번째 연은 연못이라는 공간에 서정의 중심을 옮긴다. “잉어가 꿈을 꾼다 / 비늘마다 세월이 반짝이고”라는 구절은 물속 풍경이 곧 인간의 꿈이자 시간의 은유임을 암시한다. 잉어는 고요히 떠있으나, 그 움직임은 전설처럼 유유하며, 그 아래 흐르는 ‘수면 아래 전설’은 마치 세월이라는 이름의 자맥질이다. 이는 청람 김왕식 문학의 중요한 미학, 즉 ‘겉은 정적이나 속은 깊이 움직이는 서정’의 구현이다.
네 번째 연에 이르러 시는 시간의 기록에서 현재의 체험으로 전환된다. “25살 여대생 하나 / 청아한 목소리로 사랑가를 부른다”는 장면은 현실과 전설이 교차하는 극적인 순간이며, 청년 세대의 맑은 음색은 마치 옛 사랑의 영혼을 불러오는 듯하다. 이때 ‘세상 시름이 연못에 녹아내린다’는 표현은 단순한 위안의 문장을 넘어, ‘노래의 치유력’과 ‘예술의 궁극적 사명’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공간과 시간, 인간과 사랑,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묶어낸다. “지금도 달빛은 / 사랑을 짓고 있다”는 시구는, 세월의 굴절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순전하게 남는다는 신념의 언어다. “사람이 가고 / 노래는 남는다”는 구절은 청람 문학의 깊은 성찰, 곧 ‘삶은 유한하나 예술은 무한하다’는 철학으로 귀결된다.
김왕식 작가는 늘 그러했듯, 이 시에서도 자신의 문학적 신조를 견고하게 밀고 나간다. 인간의 역사와 자연, 감성과 이성,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로서의 시, 그리고 그것을 감싸는 따뜻한 통찰. ‘광한루’는 단지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청람 문학의 세계관을 응축한 결정체이다. 누각은 곧 그의 시학의 무대이며, 그 위에 울리는 사랑가는 세속의 시름을 걷어내는 청정한 서정의 노래다. 시인은 여기서 과거와 현재를 잇고, 기억과 사랑을 잇는다. 그러므로 이 시는,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는 예술의 사명에 대한 단정이자, 그 자신이 살아온 길의 철학적 증언이다.
결국 ‘광한루’는 광한루라는 하나의 건축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지어진 누각’이다. 바람이 지나고, 햇살이 눕고, 사랑이 머무는 곳. 그 누각은 오늘도 김왕식이라는 시인의 가슴 위에 우뚝 서 있다.
ㅡ 문학평론가 김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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