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 침묵의 미학과 따뜻한 인간학의 시적 완성,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세계 ㅡ문학평론가 김기량
'말하지 않아도' ― 침묵의 미학과 따뜻한 인간학의 시적 완성,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세계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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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청람 김왕식
말하지 않아도 스며드는 마음이 있다
비 오는 날, 나무는
젖은 어깨로 세상을 끌어안는다
바람이 거세질수록
그 사람의 고요는 더 깊어지고
입술 끝에 머문 침묵은
빛보다 조용히 마음을 건넌다
가벼운 말이 스쳐간 자리엔
찢긴 꽃잎과 흩어진 온기가 남고
묵묵한 기다림은
그 꽃잎을 주워
햇살로 다시 피워 올린다
숨죽여 삼킨 한마디가
오랜 시간 돌아와
어떤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힌다
가장 조용한 말은
멀리 있는 사람의 밤을 밝히고
아무 말 없이 건넨 눈빛은
혼잣말보다 더 많은 진심을 담는다
달빛은 소리 없이 창을 열고
고개 끄덕이는 이마 위로
세상이 천천히 기댄다
어설픈 위로는 금 간 벽을 흔들지만
말 없는 손등 하나가
닫힌 마음의 문을 조용히 두드린다
사람을 지키는 것은
소리가 아니라 침묵이며
그 침묵은 어느 이름보다 단단한 사랑이다
오늘도 나는
말없이 누군가를 품는다
한 줌의 체온만으로
세상을 쓰다듬듯 그를 향한다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가장 조용한 언어로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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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 침묵의 미학과 따뜻한 인간학의 시적 완성, 청람 김왕식의 시세계
문학평론가 김기량
청람 김왕식 작가의 시 ‘말하지 않아도’는 말보다 깊은 마음, 소리보다 따뜻한 침묵의 진실을 탐구한 고요한 울림의 시편이다.
이 작품은 시인의 오랜 삶과 사유, 그리고 ‘말 없음’ 속에 담긴 존재의 진정성을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시어로 직조하며, 독자에게 깊은 위안과 감동을 전해준다.
말의 홍수 속에서 침묵의 가치가 사라져가는 오늘, 이 시는 오히려 말하지 않음이 얼마나 큰 사랑이며 배려이고, 삶의 품격인지를 뚜렷한 미의식과 인간학적 통찰로 보여준다.
서두의 “말하지 않아도 스며드는 마음이 있다”는 시의 전체적 철학을 압축한 선언적 문장이다. 이는 곧 언어 이전의 감각, 눈빛과 숨결로 전해지는 감정의 온도를 상기시키며, 침묵을 단순한 비언어의 상태가 아닌, 공감과 교감의 고요한 형식으로 제시한다.
“비 오는 날, 나무는 / 젖은 어깨로 세상을 끌어안는다”는 구절은 시인이 자연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비유하는 탁월한 방식이며, 고요한 품음 속에 존재의 본질이 담긴다는 인식이 스며 있다.
중반부의 “가벼운 말이 스쳐간 자리엔 / 찢긴 꽃잎과 흩어진 온기가 남고”는 언어의 가벼움이 때로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대비되어 “묵묵한 기다림은 / 그 꽃잎을 주워 / 햇살로 다시 피워 올린다”는 시어는 말없이 행해지는 위로와 치유의 과정을 그리며, 시인의 인생관, 곧 ‘지켜보는 사랑’, ‘기다리는 온기’의 철학을 드러낸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숨죽여 삼킨 한마디가 / 오랜 시간 돌아와 / 어떤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힌다”는 부분이다. 시인은 침묵을 순간의 감정 억제가 아닌, 시간을 건너 전달되는 사랑의 형식으로 형상화하며, 말 없는 언어의 깊이를 강조한다.
이 구절은 그의 시세계가 감정의 즉각적 분출보다 절제된 아름다움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반부는 침묵의 구체적 모습들이 등장하며 감정적 밀도를 더한다. “달빛은 소리 없이 창을 열고 / 고개 끄덕이는 이마 위로 / 세상이 천천히 기댄다”는 시구는 자연과 인간, 존재와 마음 사이의 조화로운 상응을 보여주는 서정적 절창이다.
이 대목에서 시인은 말 대신 몸짓과 기미(氣味)로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공동체적 상상력을 복원해낸다.
마지막에 이르러 “한 줌의 체온만으로 / 세상을 쓰다듬듯 그를 향한다”는 시어는 압도적인 따뜻함으로 독자의 마음을 매만진다.
이 시의 주제인 ‘말하지 않아도 사랑은 여전히 머문다’는 진술은 시인의 인생과 문학이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 즉 소리 없는 진심, 조용한 품격, 깊은 사랑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청람 김왕식 시인의 작품 미의식은 항상 ‘비움’과 ‘절제’를 통해 더욱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그는 말의 홍수 속에서도 침묵을 고르는 사람이며, 말의 기술보다 말의 책임을 먼저 아는 시인이다.
그의 언어는 감정을 부풀리지 않고, 진심을 가장 단정한 시어로 옷 입힌다. 이 시에서도 말보다 마음을, 소리보다 온기를, 표현보다 존재를 우선시하는 그의 시철학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는 시인의 삶의 철학과 문학적 사유가 조용히 맞닿아 있는 작품으로, 침묵의 윤리를 시로 풀어낸 보기 드문 수작이다.
말 없는 마음, 말보다 깊은 사랑이 그윽이 흐르는 이 시는, 언어 이전의 순결한 인간적 교감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아름답고 단단한 시적 성좌다.
ㅡ 평론가 김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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