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깨진 항아리, 새어나온 노래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깨진 항아리, 새어나온 노래 2025.08.31
깨진 항아리, 새어나온 노래

깨진 항아리, 새어나온 노래

청람 김왕식

오래된 항아리 하나가 있었다.

그 속엔 늘 곡식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그릇이었다.

항아리의 한쪽이 조금씩 금이 갔다.

처음엔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금은 점점 넓어졌고, 마침내 항아리는 한쪽이 부서져버렸다.

사람들은 그 항아리를 쓸모없다며 구석에 내버려두었다.

깨진 항아리는 침묵 속에 서 있었다.

예전처럼 곡식을 품을 수 없었기에, 더 이상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고 스스로도 생각했다.

뜻밖에도, 비가 내리던 날 항아리는 자기 안에 담긴 빗물을 흘려보내며 작은 노래를 만들어냈다.

금이 간 틈새를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는 마치 은은한 현악기의 울림처럼 맑고 고요했다.

지나가던 아이가 그 소리를 들었다.

“항아리가 노래한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한때는 흠집이자 결함이라 여겼던 그 틈이, 외려 노래의 길이 되어 있었다.

항아리는 더 이상 곡식을 담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노래를 세상에 흘려보내고 있었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금이 간다.

마음의 상처, 실패의 흔적,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기억.

그것은 우리를 쓸모없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 금이야말로 삶의 새로운 울림을 만드는 길이 될 수 있다.

완전한 그릇에서는 소리가 날 수 없듯, 부서짐을 통해서만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사람들은 흔히 흠 없는 것을 원한다.

깨끗한 항아리, 흠집 없는 돌, 상처 없는 삶.

실상은 그렇지 않다.

흠집 없는 그릇은 그저 기능만을 다할 뿐이다.

반면 금이 간 그릇은 그 틈을 통해 빛을 받아들이고, 물을 흘려보내고, 노래를 내준다.

완벽함이 주지 못하는 은총이 거기서 태어난다.

어머니의 주름진 얼굴도 그렇다.

세월의 금이 하나둘 새겨지지만, 그 금이야말로 사랑이 스며든 길이다.

아버지의 굳은살 박힌 손도 그렇다.

그 금이 있어야만 누군가의 짐을 붙들 수 있었다.

사람의 상처는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삶의 증언이며, 때로는 음악의 근원이다.

깨진 항아리는 이제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다시 항아리 곁에 모여들었다.

예전처럼 곡식을 채우진 못했지만, 그 노래는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했다.

쓸모없다 여겼던 그릇이, 사실은 마을의 새로운 힘이 된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도 말 못할 상처가, 언젠가 다른 이에게 노래가 되어 다가간다.

흘린 눈물이 위로가 되고, 실패의 경험이 지혜가 된다.

부서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오늘 우리가 짊어진 상처는 언젠가 다른 누군가에게 노래가 되어 흘러갈 것이다.

그 노래는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누군가의 마음을 붙들고, 그들을 다시 걷게 만드는 울림이면 충분하다.

깨진 항아리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완벽이 주지 못한 위로와 아름다움이었다.

흠집은 결함이 아니라, 사랑이 통과하는 문이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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