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상처 위의 꽃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상처 위의 꽃 2025.08.31

상처 위의 꽃

청람 김왕식

들에 핀 꽃 중에는

흙을 깊이 파고든 줄기 끝에서만 피어나는 꽃이 있다.

놀랍게도 금이 간 바위 틈이나 메마른 땅 위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이 있다.

흙도 부족하고, 바람은 거세며, 뿌리는 겨우 버티고 있을 뿐인데도, 그 위에 꽃은 기어코 봉오리를 터뜨린다.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이런 자리에서 꽃이 피어날 수 있는가?”

상처는 대개 고통과 아픔의 다른 이름이다.

바위의 금은 깨짐의 흔적이고, 메마른 땅의 갈라짐은 결핍의 증거다.

꽃은 그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 금을 타고 오르며 뿌리를 내리고, 그 틈새를 통해 햇살과 빗방울을 받아들인다.

상처가 없었다면 꽃은 그곳에 설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삶도 다르지 않다.

누구나 마음에 금 하나쯤은 안고 산다.

누군가는 사랑의 실패로, 누군가는 이별의 아픔으로, 또 누군가는 긴 세월의 무게로 금이 간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이미 깊이 갈라져 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상처가 새로운 생명의 통로가 된다.

상처 위에 피어난 꽃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 꽃은 아픔을 견뎌낸 증거이고, 절망을 딛고 일어선 희망의 상징이다.

어머니의 손등 위 주름진 자리에 핀 미소도 꽃이다.

세월의 상처가 깊이 새겨졌지만, 그 위에 떠오른 미소는 누구보다 따뜻하다.

병상에 누운 이가 힘겹게 지어 보인 웃음도 꽃이다.

몸은 무너져가지만, 마음은 여전히 피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 순간 사람은 깨닫는다.

꽃은 흙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상처 위에서도 피어난다는 것을.

상처를 감추려 애쓸 필요는 없다.

상처는 흉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꽃이 될 수도 있다.

흉터로 남을지, 꽃으로 피어날지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누군가는 상처를 원망의 이유로 삼고, 또 누군가는 그 상처를 새로운 힘의 뿌리로 삼는다.

바위틈의 꽃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

상처가 없는 삶은 평탄할지 모르나, 깊이는 없다.

상처를 견딘 삶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향기를 품는다.

그 향기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함께 살아갈 힘을 나눈다.

상처 없는 꽃은 잠시 아름다울 뿐이지만, 상처 위에 핀 꽃은 오래 기억된다.

그 기억은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등불이 된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 위에 수많은 상처가 있다.

넘어져 다친 무릎의 상처, 마음에 새겨진 배신의 상처, 떠나간 이를 향한 그리움의 상처.

그 위에 피어난 꽃을 바라본다면, 상처는 더 이상 단순한 아픔이 아니다.

그것은 희망의 토대요, 사랑의 증거다.

오늘도 바람은 세차고, 땅은 갈라진다.

그 위에도 꽃은 피어난다.

꽃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상처는 끝이 아니다. 그 위에서조차 삶은 다시 피어난다.”

상처 위의 꽃은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외려 그 고통을 품어내어 더 깊은 아름다움으로 피어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살아가는 길이며, 희망이 세상에 남는 방식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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