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벽돌, 다시 쌓은 집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쓰러진 벽돌, 다시 쌓은 집 202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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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벽돌, 다시 쌓은 집
청람 김왕식
한때 단단히 서 있던 집이 있었다.
사람들의 웃음과 대화가 오가던 따뜻한 공간이었다.
세월의 풍파와 한순간의 흔들림은 그 집을 무너뜨렸다.
벽돌 몇 장이 쓰러지고, 지붕이 내려앉으니 집은 더 이상 집의 기능을 다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떠나갔고, 그 자리는 잿빛 폐허로 남았다.
한 아이가 그 잔해 앞에 서 있었다.
부서진 벽돌 하나를 들어 올려보았다.
먼지가 풀풀 날렸지만, 여전히 무게와 형태를 지닌 벽돌이었다.
아이의 눈에는 그것이 단순한 폐허의 조각이 아니라, 여전히 집을 다시 세울 수 있는 ‘재료’로 보였다.
삶도 이와 같다.
우리가 세운 꿈이나 관계는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
믿었던 사람이 떠나고, 공들인 일이 물거품이 되며, 견고하다 믿었던 집이 한순간에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폐허 앞에서 절망한다.
무너진 집의 벽돌처럼, 삶의 잔해 속에도 여전히 다시 쌓을 수 있는 재료가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벽돌을 어떻게 보느냐이다.
무너진 흔적만 바라보면 벽돌은 그저 절망의 증거다.
그 벽돌을 다시 주워 들면, 그것은 새로운 집을 세울 수 있는 희망이 된다.
쓰러짐은 끝이 아니라, 다시 세움의 시작일 수 있다.
역사를 돌아봐도 그러하다.
전쟁과 재난으로 폐허가 된 도시들은 다시 일어섰다.
타버린 벽돌과 잿더미 위에서 사람들은 또다시 집을 지었다.
그 집은 이전보다 더 튼튼하고, 더 넓고, 더 따뜻한 공간이 되기도 했다.
무너짐을 겪은 자리에만 가능한 새로운 탄생이었다.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며 더 깊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
실패로 주저앉은 이가 다시 일어서며 더 단단한 꿈을 세운다.
배신과 이별로 무너진 관계 속에서, 더 진실한 사랑을 배우기도 한다.
무너짐은 아픔이지만, 동시에 다시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남긴다.
다시 집을 쌓는 일은 쉽지 않다.
먼저 남은 벽돌을 하나씩 주워야 한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쓸모없는 돌과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벽돌을 구분해야 한다.
그 고된 과정을 거치며 사람은 배운다.
무너짐이 남긴 상처가 곧 새로움의 재료가 된다는 것을.
마침내 다시 세워진 집은 이전과 다르다.
흔들림을 견뎌낸 만큼 더 단단하다.
쓰러짐을 기억하기에, 그 집은 더 따뜻하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단순한 안식뿐 아니라, 견디고 다시 세운 삶의 의미를 배운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무너진 집 하나가 있을지 모른다.
쓰러진 벽돌은 여전히 우리 손에 있다.
그 벽돌을 다시 쥐고 쌓아 올리는 일, 그것이 삶을 이어가는 길이다.
쓰러진 벽돌은 절망의 흔적이 아니라, 희망의 씨앗이다.
그 벽돌을 다시 쌓아 올릴 때, 집은 무너짐 속에서도 새롭게 태어나고, 우리는 폐허 속에서도 다시 살아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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