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안혜초 시인의 시 '잃었으나 얻었지요'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안혜초 시인의 시 '잃었으나 얻었지요'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0.04
안혜초 시인의 시 '잃었으나 얻었지요'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 인혜초시인 ㅡ 2013년 영랑 문학상 대상수상 소감 장면

□ 안혜초 시인

□ 앞줄 왼쪽 두 번째 빨간 구두 신은 분, 안혜초 시인 ㅡ 2025년 영랑 문학상 축사 후 촬영

잃었으나 얻었지요

시인 안혜초

나를 조금 잃었으나

당신을 많이 얻었지요

구름꽃을 잃었으나

바람새를 얻었지요

여름숲을 잃었으나

가을산을 얻었지요

겨울눈을 잃게 되면

봄비를 얻겠지요

다시 또 그렇게

□ 안혜초 시인

67년 현대문학 으로 등단

전직 언론인

한국PENㆍ 한국 여성문인회 자문위원

한국 문협대외협력위원

한국 기독교문협 ㆍ 이화여대동창문인회 ㆍ서울시인협 고문 외

시집:

《귤ㆍ레먼 ㆍ탱자》

《달속의 뼈》

《쓸쓸함 한 줌》

《살아있는 것들에는》 외 다수

수상:

윤동주문학상,

한국PEN문학상,

영랑문학상 대상,

미당시맥상 외 다수

상실과 획득의 변증법, 안혜초의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혜초 시인의 ‘잃었으나 얻었지요’는 상실과 획득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교차시켜, 인생의 역설적 진실을 고요한 울림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이 시가 보여주는 핵심적 철학은, 잃음이 곧 다른 얻음의 전제이며, 상실이야말로 새로운 의미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이다. 그것은 단순한 위로나 체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성찰적 깨달음이자 존재의 긍정에 가깝다.

첫 구절에서 “나를 조금 잃었으나 / 당신을 많이 얻었지요”라는 고백은, 자아의 축소가 타인의 확대와 이어지는 관계적 진리를 담는다. 이 부분에서 시인은 개인의 고립적 주체가 아니라 상호 교섭 속에서 완성되는 인간 존재를 보여준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전부 붙들 때 외려 고독해지고, 자신을 일부 내려놓을 때 비로소 타인을 통해 확장된다. 이는 안혜초 시인의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그의 시는 자기애가 아닌 타자와의 교감에서 빛을 얻는다.

이어 “구름꽃을 잃었으나 / 바람새를 얻었지요”라는 대목은 자연의 상징을 통해 잃음과 얻음을 교차시킨다. 구름꽃은 덧없는 아름다움, 잡을 수 없는 허상을 뜻한다면, 바람새는 소리를 남기며 날아가는 자유와 울림을 상징한다. 즉, 눈앞의 화려함은 사라지지만, 그것을 대체하는 더 본질적인 자유의 기운이 다가온다는 것이다. 겉모습을 잃고 내면의 본질을 얻는 자연의 순환 논리가 이 구절에 담겨 있다.

“여름숲을 잃었으나 / 가을산을 얻었지요”는 계절의 전환을 통해 상실의 아픔을 성숙의 깊이로 전환한다. 울창한 여름의 푸름이 사라져도, 단풍으로 물든 가을의 장엄함이 온다. 이는 인생의 흐름과도 겹친다. 젊음의 열정은 시간이 지나며 사라지지만, 그 대신 연륜이 빚은 성찰과 황혼의 아름다움이 찾아온다. 안혜초의 시는 이처럼 생의 무상함을 긍정의 미학으로 바꾸는 힘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겨울눈을 잃게 되면 / 봄비를 얻겠지요”라는 결말은, 잃음과 얻음의 순환이 끝나지 않음을 선언한다. 상실은 곧바로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전조이며, 자연의 질서 속에서 삶은 잃음을 통해 다음 계절로 나아간다. 이는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회복 가능성과 희망을 은유한다.

안혜초 시인의 시학은 상실을 통한 회복, 부재를 통한 충만, 끝을 통한 새로운 시작에 있다. 그는 현실의 허무와 결핍을 숨기지 않되, 그 속에서 다시 길어 올릴 수 있는 다른 의미를 발견한다. 이것이 그의 삶의 가치철학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이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깊은 위로다.

‘잃었으나 얻었지요’는 언어의 화려한 기교보다 담백한 대조와 절제된 리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간결함 속에 담긴 사유는 무겁고 깊다. 일상의 상실을 존재의 성취로 바꾸는 역설의 미학, 그것이 안혜초 시인의 작품 세계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깨닫는다. 잃는다는 것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획득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요컨대, 안혜초 시인은 상실과 획득의 변증법을 삶의 철학으로 삼아, 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더 깊은 세계와 만나는 긍정의 미학을 구축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ㅡ 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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