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 2025.10.05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

불행의 깊이만큼 행복을 느낀다

청람 김왕식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불행이 있다.

지하철에서 발을 밟혔는데 미안하단 말도 못 듣는 일,

아침에 준비한 우산을 두고 나오는 일,

또 어떤 이는 머리 위로 포탄이 터지는 불행을 겪기도 한다.

며칠 전 한 강연을 봤다.

연단에 선 안 강의자가 말했다.

“군대 시절 포탄이 터져 머릿속에 파편이 스무 개쯤 박혔습니다.”

순간 청중들이 숨을 삼켰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근데요, 그 덕분에 주름이 안 생기고 머리카락이 안 빠져요.”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강당 안은 웃음과 눈물로 뒤섞였다.

사람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그는 불행의 잔해 속에서 유머를 건져 올린 사람이었다.

그 웃음 속에는 참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불행을 탓하지 않고, 그것을 삶의 재료로 삼아버린 사람.

머릿속 파편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웃음이라는 꽃을 피운 사람.

그의 웃음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불행의 깊이를 통째로 껴안은 용서였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포탄 한두 개쯤은 터진다.

누구는 가정에서, 누구는 직장에서, 누구는 마음속에서.

사람마다 불행의 모양은 다르지만

그 파편이 남긴 상처의 자리는 다 비슷하다.

그 자리를 두고 어떤 이는 평생 아파하며 울고,

또 어떤 이는 그 상처 위에 꽃을 심는다.

그리고 후자는 결국 ‘행복한 사람’이라 불린다.

행복은 불행을 모르는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불행의 깊이를 아는 사람에게만,

그만큼 깊은 행복이 찾아온다.

고통을 견뎌본 사람만이 미소의 무게를 알고,

눈물의 짠맛을 본 사람만이 웃음의 단맛을 안다.

그래서 인생은 묘하게 균형을 맞춘다.

하늘은 절망의 깊이만큼 희망의 높이를 허락한다.

안 강의자의 말이 내 마음을 오래 흔들었다.

“불행은 끝이 아니라, 다른 행복으로 건너가는 다리입니다.”

그 말이 참 좋았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인생에도 그런 다리가 하나쯤은 있다.

넘어지고, 깨지고, 울다가도

어느 날 문득 그 다리를 건너 미소 짓게 되는 순간이 온다.

불행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사랑의 상처가 없었다면,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별이 없었다면, 만남의 소중함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불행을 미워하지만, 사실은 그 불행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그때의 눈물이 오늘의 웃음을 가능하게 했음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불행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주름 대신 미소를, 절망 대신 감사의 말을,

상처 대신 노래를 선택하는 사람.

그는 세상 어떤 성공자보다 강하고,

그의 얼굴에는 세상 어떤 화장품보다 빛나는 평화가 있다.

이제는 불행이 찾아와도 이렇게 중얼거려야겠다.

“그래, 또 다른 행복이 오려나 보다.”

그리고 웃자.

웃는 얼굴엔 주름도, 불행도 감히 붙을 수 없으니까.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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