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영광굴비 명장 정명수ㅡ '바다의 혼으로 빚은 나의 길'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영광굴비 명장 정명수ㅡ '바다의 혼으로 빚은 나의 길' 2025.10.05
영광굴비 명장 정명수ㅡ '바다의 혼으로 빚은 나의 길'

□ 영광굴비 명장 정명수

바다의 혼으로 빚은 나의 길

영광굴비 명장 정명수

나는 평생을 굴비 한 마리와 함께 살아왔다.

많은 이들이 말하길, 굴비는 단순한 생선이라 하지만, 내게 굴비는 바다의 혼이자 생명의 언어였다. 새벽의 해풍, 염전의 햇살, 바다의 소금,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한데 어우러져 비로소 ‘영광굴비’가 된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 길 위에 바쳤다.

□ 영광굴비의 유래와 전통

영광굴비의 역사는 천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시대부터 서해 칠산 앞바다는 조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어장이었다. 잡은 고기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바닷물로 만든 천일염에 절이고, 해풍에 말리는 방식이 전해졌다.

특히 내 고향 영광 법성포는 굴비에 가장 알맞은 조건을 가진 땅이다. 바람이 일정하고 염도가 적당하며, 겨울의 찬 공기가 굴비를 천천히 숙성시킨다.

그래서 굴비 한 마리는 단순한 건조물이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인내가 빚은 예술품이다. 나는 그 전통을 이어받아 오늘까지 굴비를 말리고, 묶고, 다듬어왔다.

□ 굴비의 혼과 장인의 손맛

좋은 굴비는 염도보다 ‘시간의 맛’에서 나온다.

짠맛은 잠시지만, 숙성의 깊이는 오래 간다.

나는 굴비를 만들 때 늘 이렇게 생각한다.

“고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모시는 일이다.”

고기가 바람을 만나고, 소금이 스며드는 그 모든 과정을 나는 ‘기도하듯’ 지켜본다.

때로는 하루 종일 바람의 방향을 살피고, 햇살의 세기를 손끝으로 느낀다.

그 과정에서 굴비는 스스로 익어간다.

굴비는 인위적으로 익지 않는다.

자연이 허락한 속도로만 완성된다.

나는 그 느림의 미학 속에서 굴비의 생명을 본다.

□ 영광굴비, 세계로 나아가다

이제 영광굴비는 더 이상 한 지역의 명물이 아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위생과 품질을 표준화하고, 전통 숙성법을 과학적으로 재해석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왔다. 냉풍 숙성 시스템을 도입해 사계절 어느 때나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게 했고, 해외 수출의 길도 열었다.

지금은 일본, 미국, 유럽에서도 영광굴비를 찾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굴비를 ‘Time-cured Fish’라 부르며 그 깊은 풍미에 놀란다.

나는 그럴 때마다 뿌듯하면서도 겸손해진다.

영광굴비는 내 이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바다’를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 미래의 비전

— 전통을 넘어 인류의 식탁으로

이제 나는 굴비를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문화로 보고 있다.

굴비는 자연의 선물이고, 사람의 손이 완성하는 작품이다.

앞으로는 전통의 품격을 지키면서도, 젊은 세대가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굴비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굴비는 과학으로만 만들 수 없고, 전통만으로도 완성되지 않는다.

자연과 인간, 과거와 미래가 함께 숨 쉬어야 한다.

내 꿈은 오직 단 하나다.

영광굴비를 세계인의 식탁 위에 올리는 것,

그들이 굴비를 맛보며 한국의 바다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여전히 새벽바다의 냄새 속에서 굴비를 다듬고 있을 것이다.

바람이 스쳐가는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굴비 한 마리에 나의 인생과 영광의 이름을 담아낼 것이다.

바다의 이름으로

바람이 불었다

서해의 물결이 내 가슴을 흔들었다

나는 그 바람 속에

조기의 눈빛을 보았다

그 작고 맑은 눈 안에

바다의 생이, 세월의 숨결이 깃들어 있었다

소금은 눈물로 익고

햇살은 믿음으로 말랐다

나는 그 위에

한 점의 생명을 매달았다

하루, 이틀, 한 철, 한 생애

시간은 굴비의 살 속으로 스며들었다

짠맛은 사라지고

감동만 남았다

사람들이 말하더라

그대의 굴비는 왜 이리 향이 깊으냐고

나는 고개를 들었다

하늘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는 바다로 굴비를 만들었고,

굴비로 내 인생을 말렸다.”

ㅡ 정명수

영광굴비 정명수 명장

ㅡ바다의 혼, 장인의 생애로 익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명수 명장의 글은 단순한 장인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생의 서사이며, 바다의 호흡으로 빚은 철학의 언어다. 글의 첫 문장에서 “나는 평생을 굴비 한 마리와 함께 살아왔다”는 고백은 이미 모든 미사여구를 거부한 진정의 문장이다. 이 문장 하나에 그의 삶 전체가, 그리고 한국의 바다가 응축되어 있다. 굴비를 생선으로 보지 않고 “바다의 혼이자 생명의 언어”라 명명한 표현에는 사물에 깃든 존재론적 통찰이 있다. 그것은 노동의 미학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지다.

‘영광굴비의 유래와 전통’ 부분은 단순한 역사 서술이 아니라, 세월의 풍화 속에서 전통이 어떻게 생명력을 유지하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인류학적 서사로 읽힌다. 굴비가 천일염과 해풍으로 익어간다는 문장은 단지 조리의 과정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는 순응의 미학을 드러낸다. 영광 법성포의 바람과 염도, 그 속에서 자라난 명장의 손끝은 자연의 섭리를 읽는 지혜의 결과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만드는 자’가 아닌 ‘모시는 자’로서의 장인, 즉 존재의 겸허함을 본다.

‘굴비의 혼과 장인의 손맛’은 이 글의 중심축이다. 정명수 명장은 “고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모시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이 한 문장은 장인의 세계관을 압축한다. 그에게 굴비는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시간이 만든 생명’이며, 바람과 햇살, 염분과 기다림이 함께 엮은 존재다. 그는 자연을 이용하지 않는다. 자연이 허락하는 만큼만 일하고, 그 느림 속에서 숙성의 의미를 배운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맛’이다. 오늘날 속도와 효율로만 재단되는 산업의 시대에, 이 느림의 미학은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는 윤리적 메시지로 읽힌다.

‘세계로 나아가다’의 대목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보여준다. 그는 과학을 전통의 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대적 기술을 접목시켜, 굴비를 세계인의 식탁으로 올린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바다를 알리는 일’이 자신을 드러내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겸허한 진술은 진정한 장인의 품격을 보여준다. 명장은 세계화를 ‘확장’이 아니라 ‘공유’로 이해한다. 굴비의 세계화는 곧 바다의 정신이 인류의 언어로 번역되는 일이다.

마지막 ‘미래의 비전’에서 정명수 명장은 자신의 일생을 ‘문화’로 환원한다. 굴비를 통해 인간과 자연, 과거와 미래의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단순한 산업의 목표가 아니라, 문명적 사명으로 들린다. “자연과 인간, 과거와 미래가 함께 숨 쉬어야 한다”는 문장은 장인의 언어를 넘어 예술가의 언어로, 나아가 철학자의 언어로 확장된다. 그는 이미 기술의 경지를 넘어 ‘삶을 예술로 숙성시킨 사람’이 된 것이다.

마지막 시 〈바다의 이름으로〉는 그의 생애를 시적으로 응축한 결정체다. “소금은 눈물로 익고, 햇살은 믿음으로 말랐다”는 구절에서 인간의 노동은 곧 신앙이 되고, 시간은 기도가 된다. 그가 매단 것은 단순한 생선이 아니라 존재의 무게다. “나는 바다로 굴비를 만들었고, 굴비로 내 인생을 말렸다”는 마지막 행은 생의 완결을 선언하는 동시에, 바다와 인간이 한 몸이 되는 궁극의 합일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다를 닮은 인간의 겸허함, 인간을 닮은 바다의 깊이를 함께 품은 문장이다.

정명수 명장의 글은 산업의 보고서가 아니라 예술의 기록이다. 굴비라는 한정된 대상 안에서 그는 자연과 인간, 시간과 생명, 전통과 미래를 하나로 엮어냈다. 바다는 그에게 재료가 아니라 신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신의 언어를 굴비라는 형상으로 번역한 사제였다. 그의 삶은 결국 한 마리 굴비처럼 바람에 말라가면서도, 그 속에서 향을 남기는 일이었다.

그의 굴비가 오래도록 짠맛 대신 감동의 맛으로 남는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소금으로 간을 맞춘 음식이 아니라, 영혼으로 숙성된 인생이기 때문이다.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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