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정순영 시인 송(頌) ― 겸허함으로 빚은 한 편의 시 ―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순영 시인 송(頌) ― 겸허함으로 빚은 한 편의 시 2025.10.06
정순영 시인 송(頌) ― 겸허함으로 빚은 한 편의 시

□ 정순영 시인의 망중한

정순영 시인 송(頌)

― 겸허함으로 빚은 한 편의 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는 언제나 앞에 서기보다 뒤에 서는 이였다. 대학의 총장이요, 석좌교수로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시인의 자리에서는 묵묵히 막내의 자리를 선택했다.

조병기, 허형만, 임병호, 그리고 정순영. 네 이름이 나란히 놓인 자리에서, 그는 언제나 형님들의 빈잔을 채우고, 뒤처진 자리를 정리했다. 그것이 누군가의 강요가 아니라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 자연스러운 질서였다. 세속의 높낮이를 벗어난 겸허의 품성, 그것이 곧 정순영이라는 이름의 본질이었다.

그의 시는 마치 오래된 우물물 같다. 말없이 맑고, 맑아서 더욱 깊다. 누구의 눈길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천천히 고이고, 어느 날 문득 그 물을 길어 마신 이의 가슴속에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학문은 그에게 논리의 언어를 주었고, 문학은 그에게 침묵의 언어를 주었다. 그는 그 두 세계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며, 말보다 더 큰 말, 곧 ‘존재의 온기’를 써 내려왔다.

대학 총장으로서의 삶은 수많은 책임과 판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그는 늘 한 발 물러서 있었다. 중심을 잡되 중심을 내세우지 않는 법을 아는 사람, 권위보다는 품격으로 사람을 이끄는 사람. 그의 온화한 눈빛은 칠흑 같은 밤에도 등불이 되었고, 학생과 동료들에게는 늘 마음의 의자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그는 ‘지도자’가 아니라 ‘스승’으로, 또 ‘시인’으로 남았다.

문학의 자리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남들이 문단의 중심에 서려 할 때, 그는 중심을 감싸는 주변이 되었다. 모임의 허드렛일을 맡으면서도 한 번의 불평이 없었다.

마치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지 않고 스쳐 지나가듯, 그는 형님 시인들의 세계를 조용히 지탱했다. 그 모습은 한 폭의 시였고, 시인의 품격이란 무엇인지를 실체로 보여주는 살아 있는 교본이었다.

그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다. 그 안에는 세월이 머문다. 한 줄의 시가 곧 한 생애의 기록이고, 한 문장이 곧 한 사람의 철학이다. 그는 세상의 번다한 언어를 걷어내고, 오직 인간의 따뜻함과 자연의 숨결로 문장을 빚었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한 편의 시보다 한 사람의 생애를 읽는 일과 같다.

이 시대는 큰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많지만, 깊은 울림을 가진 이는 드물다. 정순영 시인은 그 드문 울림을 지닌 이다. 조용한 사람의 미덕, 묵묵한 헌신의 가치, 그리고 낮은 자리에서 빛나는 품격이 그를 이 시대의 진정한 ‘문학의 스승’으로 세웠다.

그는 이제도 형님들의 뒤에서 조용히 미소 지으며, 한가위 달빛처럼 세상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등불보다 더 따뜻한 그 빛이, 문단의 길목마다 스며들어 후배들의 길을 비춰주고 있다.

한 세월, 그가 걸어온 길은 화려한 영광이 아니라 조용한 진실의 길이었다. 그 길 위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의 마음속에 향기처럼 스며들었다.

우리는 그를 ‘총장님’이라 부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시인님’이라 부른다.

그 두 이름은 다르지 않다. 하나는 책임의 이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이름이다.

오늘의 달빛 아래, 정순영 시인의 겸허한 삶을 노래한다.

그의 이름은 바람에 흩어지지 않는다. 외려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맑아지는 시의 결로 남는다.

그가 남긴 것은 시 몇 편이 아니라, ‘사람됨’이라는 한 편의 장대한 서사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 마음 속에서 조용히 쓰이고 있다

정순영 송(頌)

― 달빛 같은 사람에게

청람 김왕식

조용히 웃으며 뒤를 걷는 이

그 이름 정순영

학문의 높은 봉우리에서

시의 낮은 들길로 내려와

먼지 묻은 책상 끝에 달빛을 앉히고

묵묵히 사람의 향기를 빚는다

총장이었으나

시인들 모임에서는 막내로 서서

잔을 채우고, 의자를 닦고

형님들의 농담에 고개 숙여 웃는다

그 웃음 한 줄기 안에

권위보다 더 깊은 인품이 숨 쉬고

배움보다 더 큰 겸허가 피어난다

그의 삶은 소리 없는 시다

거센 박수 대신

한 사람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는 언어

그것이 그의 시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메우는

한 마디의 고요

그 고요가 곧 그의 목소리다

바람이 불어와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을 낮추어

남을 높이는 나무처럼

그늘이 되어 제자를 쉬게 하고

빛이 되어 동료를 비춘다

형님 시인들의 무게를 받치며

땀 젖은 어깨로 웃는 그

아, 세상의 질서를 거꾸로 세운

참된 사람, 참된 시인

그의 겸허는 미덕이 아니라

삶의 본체요, 그의 시는

학문의 탑보다 더 높이 선 마음의 산맥이다

그가 걷는 길 뒤로

낙엽처럼 떨어지는 시간들

그 위에 잔잔히 내리는 것은

달빛인가, 사람의 향기인가

그 향기를 따라

우리 모두 고개 숙여 배운다

오늘의 달빛 아래

그의 이름을 부른다

정순영—

그대는 이미 한 편의 시로 살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겸허’라는 제목의 아름다운 시로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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