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고향극장 ㅡ 청람 김왕식
달빛 고향극장 2025.10.06
달빛 고향극장
청람 김왕식
어릴 적 내 고향엔 극장이 없었다
달이 극장이었다
달빛이 들판 위에 쏟아지면
논두렁은 스크린이 되고
개구리 합창단이 음악을 맡았다
우린 짚단 위에 앉아
달빛을 배경으로 연애를 배웠고
별똥별이 툭 떨어지면
그게 영화의 엔딩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마당 끝에 앉아
감잎차를 우려 마셨다
“달도 결국 뜨거운 가마에서 구워진 거다.”
그 말씀이 괜히 무섭고 웃겨서
하늘을 보며 껄껄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개울 따라 흘러가
다음 마을 논둑까지 갔다던 전설이 있다
장터엔 소금 장수, 약 장수, 고무신 장수
세상 다 아는 말 많은 이장님
이장님은 술만 들어가면
“우리 동네에도 언젠간 기차가 선다!”
그러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기차는 아직도 어딘가 오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늦잠 자는 우리 모두를 태우러
꿈속으로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고향의 시간은 느렸다
우체부는 자전거에 바람을 잃고
개는 주인을 잃고도 하루 종일 마당을 지켰다
해질녘이 오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종소리처럼 울렸다
그 소리 뒤엔 늘 밥 냄새가 있었고
밥상 위엔 마른 고추와 된장
어머니의 말없는 기도가 있었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이젠 극장도, 장터도, 달빛도 사라졌지만
내 마음 속 어딘가엔 아직
그 시절의 상영이 계속된다
가끔 외로움이 밀려올 때면
그 영화표를 꺼내어 다시 본다
어머니의 미소, 아버지의 손
웃음과 눈물과 구수한 사투리의 향기가
모두 거기 있다
오늘도
도시의 불빛 아래 서면
나는 괜히 웃음이 난다
그 웃음 끝엔 눈물이 있고
그 눈물 끝엔 달빛이 있다
달빛은 아직 내 고향에서 상영 중이다
그 극장에는
늘 자리가 하나 비어 있다
나를 기다리는 자리
어머니가 남겨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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