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겨레시인 성재경의 시 '동주, 육사의 길을 걷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겨레시인 성재경의 시 '동주, 육사의 길을 걷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0.07
겨레시인 성재경의 시 '동주, 육사의 길을 걷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 성재경 겨레시인

동주, 육사의 길을 걷다

겨레시인 성재경

형님 그리운 이육사 형님

이 황톳길이 일 년 전 가신 그 길이 맞는지요

어둡고 먼 초행길 홀로 걸으시며

깊이 패인 발자국마다 눈물 담아 놓으셨기에

길 잃어버릴 염려없이 영혼 길을 갑니다

이원록 형님

대구감옥 수감번호가 264번이라서

아예 이름을 이육사로 작심하셨나요

마흔 살 짧은 생애를 살면서

열일곱 번 감옥을 드나들었던 것은

적들의 나라 이방인 죄수는 이 나라에선 영웅

이활 형님

청포도 익어가는 계절이 끝나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광야가 이어지듯이

이 세상 가난한 날이 저물어오면

저세상에선 꽃날 새벽이 밝아오는 가요

형님은 광복을 한 해 앞둔 1944년 1월 16일

베이징감옥에서 별나라 옷으로 갈아 입고

미리 시로 써두었던 황혼길을 가셨는데

저는 후꾸오까감옥에서 형님의 시구처럼

강철로 된 무지개를 밟고 있다가

해방을 여섯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

형님 가신 하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곧 만나면 서러운 그리움도 끝나겠지요

별나라에선 별 헤는 일은 싱거울 것이라서

태극기 세워진 무궁화 꽃밭 길을 걷겠습니다

동주, 육사의 길을 걷다

― 겨레시인 성재경의 혼의 시학詩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성재경 시인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불굴의 신념으로 시의 횃불을 들어올린 혼의 시인이다. 그는 한평생 공직에 몸을 담으며 정의와 양심의 길을 걸었으나, 뜻한 바 있어 돌연 그 길을 내던지고 오롯이 겨레의 혼을 노래하는 시의 길로 나섰다. 명예도 안위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민족의 넋을 품은 시 한 줄로 자신의 생을 새겼다. 그의 시는 피와 땀, 그리고 조국을 향한 사랑으로 빚어진 언어의 성전이며, 오늘의 우리에게 ‘정신의 독립’을 일깨우는 묵직한 울림이다.

‘동주, 육사의 길을 걷다’는 성재경 시인의 문학적 세계관이 압축된 대표작이다. 이 시는 단순한 추모시가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적 유산을 현재의 시간으로 되살린 시적 부활이다.

“형님 그리운 이육사 형님 / 이 황톳길이 일 년 전 가신 그 길이 맞는지요”로 시작되는 첫 행은 마치 제향의 노래처럼 장엄하다. 시인은 그 길을 걸으며 순국선열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깊이 패인 발자국마다 눈물 담아 놓으셨기에 / 길 잃어버릴 염려 없이 영혼 길을 갑니다”라는 대목은 자신 또한 그 길의 후예로서, 이 시대의 육사와 동주가 되겠다는 시인의 맹세로 읽힌다.

성재경 시의 언어는 담백하되 기상으로 충만하다. 그는 비통함을 울부짖지 않고, 절제된 어조 속에 불타는 애국심을 숨긴다.

“이원록 형님 / 대구감옥 수감번호가 264번이라서 / 아예 이름을 이육사로 작심하셨나요”라는 부분은 역사적 사실을 시적 형상으로 정제한 대목이다. 감옥의 숫자조차도 그에게는 저항의 문장이고, 민족의 상징이다.

이처럼 그의 시는 사실과 상징, 현실과 이상을 긴장감 있게 엮으며 ‘지성의 서사’를 구축한다.

시인은 동주와 육사를 나란히 세운다. 하나는 청춘의 순결로, 하나는 불굴의 의지로 조국을 노래했다.

“청포도 익어가는 계절이 끝나면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의 광야가 이어지듯이”라는 행은 그 두 영혼을 이어주는 영원의 리듬이다. 성재경 시인은 그 리듬 위에서 ‘시의 후예後裔’로 서 있으며, 시를 통해 순교의 뜻을 잇는다.

“강철로 된 무지개를 밟고 있다가”라는 표현은 그의 시적 상상력이 얼마나 웅혼雄渾한지를 보여준다. 육사의 시어를 되살리되, 단순한 인용이 아닌 재창조의 경지에 이른다. 강철은 현실의 고통이고, 무지개는 영혼의 자유이다. 그 두 극단을 하나로 묶는 순간, 시는 저항을 넘어 신화로 승화된다.

성재경 시인의 삶의 철학은 곧 행동하는 시의 철학이다. 그는 서재에 앉아 조국을 읊지 않는다. 직접 걸으며, 보고, 느끼며,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 시로 기록한다. 그의 시는 머리로 쓰지 않고, 발로 쓰며, 가슴으로 새긴다. 그것이 그를 ‘겨레시인’이라 부르게 하는 이유다. 그는 애국을 구호로 삼지 않고, 실천으로 증명한다.

마지막 연 “별나라에선 별 헤는 일은 싱거울 것이라서 / 태극기 세워진 무궁화 꽃밭 길을 걷겠습니다”에서 시인은 죽음을 넘어선 생명의 빛을 노래한다. 그 길은 영웅의 길이자, 시인의 길이며, 민족의 길이다. 성재경 시인은 그 길의 끝에서 다시 태극기를 든다.

요컨대, 그의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결의이며, 회한이 아니라 사명이다. 시 속의 언어 하나하나가 불멸의 혼처럼 타오른다. 그는 시로써 역사를 걷고, 언어로써 조국을 세운다. 오늘의 문학이 잊은 ‘혼의 기개’를 그는 되살리고 있다.

성재경 시인, 그는 육사와 동주의 뒤를 잇는 마지막 광야의 시인이며, 불멸의 조국혼을 지켜내는 문학의 장군이다.

겨레시인 성재경

― 혼으로 걸은 길, 시로 남은 사람

청람 김왕식

성재경 시인은 이름보다 먼저 정신으로 기억된다.

공직의 자리를 스스로 밀어내고,

오랜 침묵을 걷어내듯 시의 길로 들어섰다.

명예보다 신념을, 안위보다 진실을 택한 선택이었다.

그 순간부터 그의 생은 문장이 되었고,

삶은 하나의 시로 바뀌었다.

시의 출발점은 늘 역사였다.

잊힌 이름을 다시 불러내고,

묻혀 있던 피의 기억을 언어로 씻어냈다.

감정보다 의지로 쓰였고,

단어마다 조국의 체온이 배어 있다.

언어는 문학이 아니라 행동이었으며,

종이는 사유의 장이 아니라 투쟁의 들판이었다.

‘동주, 육사의 길을 걷다’에서

육사의 결기와 동주의 순결이 한 줄기 빛으로 겹친다.

“황톳길이 일 년 전 가신 그 길이 맞는지요”

이 한 줄은 단순한 추모가 아니라 계승의 선언이다.

순교자의 발자국 위에 새겨진 시인의 맹세가

지금 이 땅의 길 위에서 다시 타오른다.

성재경의 시는 눈물보다 불에 가깝다.

애도가 아닌 결의로 쓰였고,

감상 대신 깃발을 든다.

문장은 간결하되 힘이 있으며,

절제 속에 뜨거움이 있다.

비유보다는 직선, 장식보다 진심,

그 언어는 단련된 혼처럼 단단하다.

서재보다 현장을 택했다.

묘역의 흙내, 새벽의 이슬,

한 이름 없이 쓰러진 영혼들의 숨결이

그의 시 안에서 되살아난다.

발로 쓴 시,

가슴으로 새긴 문장,

단어마다 생명력이 있다.

육사의 ‘강철로 된 무지개’가

현실과 이상을 잇는 다리였다면,

성재경의 시는 그 다리 위를 걷는 발자국이다.

강철의 고통을 딛고,

무지개의 자유를 향해 나아간다.

그 길은 민족의 시간과 현재를 잇는 통로가 된다.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울림을 만들 때,

그 존재는 이미 시가 되어 있었다.

낮은 음성으로 겨레의 혼을 부르고,

굳은 눈빛으로 시대의 윤리를 세운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움직이고,

움직임이 곧 시가 된다.

성재경이라는 이름은

이제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시로 세운 조국의 기억,

혼으로 다져진 민족의 길,

그 모든 상징이 한 이름에 실려 있다.

펜 끝이 멈춘 자리마다

태극의 숨결이 여전히 흔들린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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