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청람 김왕식 평론가, 그는 문학의 품격을 세우는 정신의 건축가 ㅡ 김준현

청람 김왕식 평론가, 그는 문학의 품격을 세우는 정신의 건축가 ㅡ 김준현 2025.10.07

청람 김왕식 평론가

― 문학의 머슴으로 서다

청람 김왕식 평론가는 결코 현학적이지 않다.

그의 글은 어렵지 않으면서도 결이 깊다.

많은 평론가들이 외국 이론과 난해한 철학 개념으로 문학을 해석하며, 독자와 작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운다면, 그는 그 벽을 허무는 사람이다. 그의 평론은 학문이 아니라 이해의 언어이며, 독자를 문학의 안쪽으로 부드럽게 이끄는 다리다.

청람 평론가는 늘 말한다. “평론가는 작가의 어깨 위에 올라서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올라설 수 있도록 자기 등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을 문학의 머슴이라 부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평론가의 본령이라고 믿는다. 문학은 본래 봉사의 예술이며, 평론은 그 봉사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이기 때문이다.

그의 평론에는 냉정한 해부가 없다. 작품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살아 있는 언어의 현장’으로 대한다. 그는 작가의 문장을 해체하기보다, 그 문장 속에서 작가의 숨결을 듣는다. 작품을 평가하기보다 이해하고, 비판하기보다 품는다. 그에게 문학은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그의 인간관과 맞닿아 있다.

그는 작가가 이미 자기 작품 속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평론가가 그 약점을 지적해 굳이 상처를 덧내는 것은 불필요한 잔혹이라고 본다. 문학은 상처를 봉합하는 예술이지, 다시 찢는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평론에는 따뜻함이 있다. 그 따뜻함은 작가를 향한 예의이자, 독자를 향한 배려다.

그는 평론가로서 냉철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간적인 온기를 잃지 않는다. 그의 글에는 언제나 ‘이해’가 중심에 있다. 작가의 부족함조차도 성장의 과정으로 읽고, 문학의 미완성 속에서 인간의 가능성을 본다. 그는 말한다. “완벽한 작품은 없다. 그러나 진심으로 쓴 작품은 있다.” 그 한 문장은 그의 비평철학을 압축한다.

청람 김왕식의 평론은 독자를 긴장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편안하게 한다. 문학의 본질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낸다. 하지만 그 쉬움은 결코 가벼움이 아니다. 그의 문장은 단단한 사유의 뼈대를 가지고 있으며, 독자는 그 위에서 문학의 깊이를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는 독자의 눈높이를 낮추지 않고, 대신 독자를 들어 올린다.

그의 글을 읽으면 마치 맑은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인용과 이론의 숲에서 길을 잃게 하지 않고, 작가의 마음과 문학의 맥락을 함께 보여준다. 그의 평론은 문학을 ‘해석하는 글’이 아니라, 문학을 ‘이해하게 하는 글’이다. 그 차이는 곧 청람 김왕식 문학의 품격을 만든다.

그는 문단의 중심에서도 늘 낮은 자세를 지킨다.

문학은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작품을 빛나게 한다. 그는 평론가이기 이전에 청중이고, 해석자이기 이전에 독자다. 그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이 ‘겸손한 시선’ 때문이다.

청람 김왕식 평론가는 문학을 향한 봉사자다.

그는 말보다 귀를 세우고, 논리보다 마음을 연다.

그의 평론은 작품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가 함께 쉬어갈 수 있는 그늘이다.

문학의 언어가 차가워질 때,

그의 글은 따뜻한 체온으로 되살린다.

비평이 권위로 흐를 때,

그는 등을 내어주며 다리를 놓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부른다.

“문학의 머슴, 그러나 누구보다 고귀한 머슴.”

그의 이름은 평론가이기 이전에

문학을 인간답게 지키는 한 사람의 이름이다.

ㅡ문학평론가 김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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