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사랑이 나를 삼키게 하라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랑이 나를 삼키게 하라 2025.10.08
사랑이 나를 삼키게 하라

사랑이 나를 삼키게 하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돈에 집중하면 물질이 내 마음을 삼키게 된다. 돈은 단순한 교환의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을수록 마음은 점점 비뚤어지고, 욕망은 생명을 잠식한다. 돈을 좇는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돈의 그림자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손에 쥔 것은 늘어나지만, 마음속의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결국엔 자기 자신을 잃는다. 물질은 본래 인간의 종이어야 하지만, 그것이 주인이 되는 순간 인간의 영혼은 시장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는다.

허나, 시선이 달라질 때 삶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남의 유익’에 집중하는 사람, 곧 타인의 행복을 우선하는 사람은 세상의 중심을 자기에서 이웃으로 옮긴다. 그는 물질이 아니라 사랑의 법칙으로 살아간다.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그 사랑이 오히려 나를 삼킨다. 그때의 삼킴은 파괴가 아니라 완성이다. 나의 욕망이 소멸되고, 대신 타인을 향한 따뜻한 연민이 내 안에 가득 차오른다. 사랑은 그렇게 인간의 본성을 되돌려주는 가장 순수한 불이다.

사랑을 행하는 사람은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계산하지 않고, 남이 알아주길 바라지 않는다. 단지 사랑해야 하므로 사랑할 뿐이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결코 베푸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생명의 반응이다. 사랑은 내면의 심장에서 피어나는 신의 호흡이며, 그것을 실천할 때 인간은 신의 형상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의 사람은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 않는다. 그는 외려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기쁨을 배운다.

돈이 주는 쾌락은 순간이지만, 사랑이 주는 평화는 영원하다. 물질의 세계에서는 ‘가진 자’가 중심이 되지만, 사랑의 세계에서는 ‘주는 자’가 주인이다. 돈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 수는 없다. 진정한 평안은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할 때 찾아온다. 그것은 마음의 주파수를 이익에서 은혜로, 욕망에서 감사로 옮기는 일이다. 사랑은 계산을 지우고, 관계를 회복시킨다. 사랑은 인생의 질서를 되돌려 놓는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 사랑을 행하는 사람이다. 그에게 믿음은 단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신앙은 교회 안의 고백이 아니라, 세상 속의 실천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통해만 그분을 닮을 수 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드려도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사랑은 기도보다 깊고, 헌신보다 강하다. 그것은 존재의 중심을 바꾸는 근본적 전환이다.

세상은 여전히 돈을 신처럼 섬기지만, 그 신은 인간을 결코 구원하지 못한다. 돈은 소유를 늘릴 수는 있어도, 생명의 깊이를 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은 빈손에서도 기적을 일으킨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오히려 풍요롭고, 나누는 자가 오히려 충만하다. 사랑이 내 안에 들어오면 세상의 기준이 무너지고, 하늘의 법이 시작된다. 그때 인간은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돈이 나를 삼키면 나는 종이 되지만, 사랑이 나를 삼키면 나는 주인이 된다. 물질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웃의 얼굴 속에서 하느님의 형상을 볼 때, 그때 비로소 인간은 살아 있는 영혼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자신을 태워 타인을 밝히는 사람.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이다.

사랑이 나를 삼키게 하라. 그리하면 세상은 비로소 구원의 빛을 본다.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