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유응교 시인의 '한로寒露'를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응교 시인의 '한로寒露'를 읽고 2025.10.08
유응교 시인의 '한로寒露'를 읽고

한로寒露

시인 유응교

이슬이 차게 내려 풀잎 끝 영롱하고

기러기 울음소리 하늘 끝 들려올 때

산과 들 해맑은 숨결 온 누리에 번지누나

서늘한 바람결에 가을이 깊어지고

동트는 새벽하늘 찬 이슬 내려줄 때

하늘과 대지가 만나 생명의 숨 쉬누나

서리꽃 피어나는 고요한 산의 품에

풀잎의 숨결 따라 바람도 기도할 때

저마다 제자리에서 영혼의 빛 머무누나

유응교 시인의 ‘한로寒露’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응교 시인의 ‘한로寒露’는 계절의 순환을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질서를 노래한 작품이다. 시인은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오랜 세월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학자이지만, 그 학문적 이성이 감성을 압도하지 않는다. 외려 그는 지성과 감성을 조화롭게 엮어,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시심이 만나는 경계에서 가장 투명한 언어의 결정을 빚어낸다. ‘한로’는 바로 그 절제된 사유와 정서의 균형이 빚어낸 정제된 서정시다.

첫 연 “이슬이 차게 내려 풀잎 끝 영롱하고 / 기러기 울음소리 하늘 끝 들려올 때 / 산과 들 해맑은 숨결 온 누리에 번지누나”에서 시인은 자연의 정경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슬’과 ‘기러기 울음’이라는 이미지 속에는 계절의 흐름뿐 아니라 생명의 순환과 시간의 영원을 담아낸다. 건축학적 감각으로 치밀하게 구성된 언어의 질서는 마치 설계도 위의 정교한 선처럼 단단하지만, 그 안을 흐르는 정서는 이슬처럼 맑고 부드럽다. 유응교 시인의 언어는 차갑게 다듬어진 돌 속에 따뜻한 심장을 넣은 듯, 구조와 감정이 완벽히 공존한다.

두 번째 연 “서늘한 바람결에 가을이 깊어지고 / 동트는 새벽하늘 찬 이슬 내려줄 때 / 하늘과 대지가 만나 생명의 숨 쉬누나”는 시인의 사유적 깊이를 드러낸다. 하늘과 땅의 만남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우주의 조화 속에서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창조의 순간이다. 이는 그가 학문과 시를 동일한 진리 탐구의 여정으로 인식해온 내면의 철학을 반영한다. 건축이 구조의 예술이라면, 시는 생명의 예술이다. 유응교는 그 둘을 하나의 축으로 세워 인간과 자연, 하늘과 땅, 이성과 감성의 화해를 시 속에 구현한다.

마지막 연 “서리꽃 피어나는 고요한 산의 품에 / 풀잎의 숨결 따라 바람도 기도할 때 / 저마다 제자리에서 영혼의 빛 머무누나”에서 시인은 인간 존재의 궁극적 평형을 제시한다. ‘바람도 기도할 때’라는 구절은 자연과 신앙, 과학과 영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유응교 시인은 오랜 교수 생활 속에서도 인간의 내면과 우주의 섭리를 통찰하며, 지식이 아닌 지혜의 세계를 추구했다. 그에게 학문은 삶을 견고하게 세우는 기둥이고, 시는 그 위에 생명을 얹는 지붕이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균형’과 ‘조화’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이는 건축적 사고와 시적 감성이 한 몸처럼 어우러진 결과다. 이성의 냉철함이 언어를 정제하고, 감성의 따뜻함이 그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그의 시는 차가운 듯 고요하고, 단단한 듯 부드럽다. 그는 자연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성찰하고, 계절의 변화를 통해 삶의 영속을 노래한다.

유응교 시인의 시 세계는 ‘학문하는 시인’의 전형이자, ‘시를 사유하는 학자’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그는 지식으로 삶을 설계하고, 시로 그 설계 위에 영혼을 세운다. 그에게 한로는 단순한 절기가 아니라, 인간이 겸허히 자신을 비워 하늘의 질서와 하나 되는 순간이다.

‘한로’는 차가운 이슬 속에서도 따뜻한 숨결을 잃지 않는 시인의 영혼을 담은 시다. 그 고요하고 맑은 언어 속에는 학문으로 다듬은 지성의 빛과, 신앙과 사랑으로 익힌 감성의 향기가 함께 흐른다.

유응교 시인의 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한다.

이성으로 세우고, 감성으로 완성하라. 그때 비로소 삶은 예술이 된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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