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이혜선 시인의 시 '색色을 먹고 공空을 낳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이혜선 시인의 시 '색色을 먹고 공空을 낳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0.08
이혜선 시인의 시 '색色을 먹고 공空을 낳다'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색色을 먹고 공空을 낳다

시인 이혜선

절골 자연 휴양림에

생강나무 층층나무 산딸나무 어깨 겯고 서 있다

해돋이 봄 하늘이 달려와 뻥튀기판이

햇살이 나무를 뻥튀기하더니

노란 생강나무 꽃이 피었다

층층나무 산딸나무에 차례로 하얀 꽃이 피었다

숲 속에 해종일 하늘바라기선 나도

나무 옆에 빈 손 들고 서서

나무가 되었다

꽃의 염색체를 안고

온몸 물관부 잔가지 흔든다

뿌리를 거꾸로 허방을 쓸어본다

함박눈 내려 쌓이는 겨울이면

새벽마다 동그란 이슬방울이 내려와

하얀 허방꽃을 피운다

열매도 뿌리도 떨어진 이파리도

모두 허방꽃으로 피어난다

색色을 먹고 공空을 낳다

― 차원을 넘어선 존재의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혜선 시인의 시 ‘색을 먹고 공을 낳다’는 자연의 표면을 묘사하는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생멸과 부활이 서로를 비추는 차원의 시학이다.

시인은 자연의 한 장면을 통해 존재의 근원을 탐구하고, 삶의 언어를 초월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절골의 숲속에서 마주한 생강나무와 층층나무, 산딸나무는 그저 풍경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성상聖像이며, 시인은 그 앞에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 ‘존재의 본래성’으로 귀의한다.

“해돋이 봄 하늘이 달려와 / 햇살이 나무를 뻥튀기하더니”라는 구절은 단순한 자연 현상의 묘사가 아니다. 이 문장에는 창조의 첫날처럼 찬란한 우주의 숨결이 담겨 있다. 빛이 나무를 깨우고, 나무가 다시 하늘의 색을 흡수해 꽃을 피워내는 순간—그것은 곧 존재의 생성이며, 생명 탄생의 신비가 된다. 이혜선 시인의 언어는 감각의 시학을 넘어, 자연을 신의 숨결로 읽어내는 신성한 통찰의 언어다.

시인은 곧 자연이 된다. “나무 옆에 빈 손 들고 서서 / 나무가 되었다”는 구절은 자아의 해체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그는 자연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자연과 하나로 융합된 존재이다. 인간과 사물의 경계를 초월하는 이 감각은 그의 시가 지닌 본질적 특징이다. 이혜선의 시는 묘사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됨의 체험’으로, 존재의 차원을 바꾸는 영적 사건이다. 그의 시는 감상에서 끝나지 않고, 읽는 이로 스스로 내면의 색을 깨닫게 한다.

“꽃의 염색체를 안고 / 온몸 물관부 잔가지 흔든다”는 구절은 색의 물리적 현상을 넘어선 정신적 교감의 선언이다. 색은 빛의 언어이자 영혼의 숨결이다. 시인은 그 색을 ‘먹는다’. 곧 자연의 진동을 흡수해 자신의 존재로 전이시킨다. 그리고 그 결과로 ‘공空을 낳는다’. 이때의 ‘공’은 허무가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합되는 ‘무경계의 세계’를 뜻한다. 이혜선 시인의 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 단계 상승한다. 자연을 노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연을 통해 존재의 이치를 깨닫는 차원의 시로 도약한다.

“뿌리를 거꾸로 허방을 쓸어본다”는 표현은 인간의 본원으로의 회귀를 상징한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시간의 역행이자 자기 존재의 근원을 탐색하는 영적 노정이다. 시인은 존재의 바닥,

즉 ‘허방’에서 생명을 다시 본다. 그 허방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새 생명이 움트는 무한의 자리다. “열매도 뿌리도 떨어진 이파리도 / 모두 허방꽃으로 피어난다”는 결말은 곧 부활의 시학이다. 사라짐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에서의 시작임을 깨닫는 것—이것이 바로 이혜선 시인이 발견한 존재의 진리이다.

그의 시는 현실의 언어를 넘어선다. 감각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을 옮겨 놓는 영혼의 발화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자연의 묘미를 음미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의 신비를 체험하는 일이다. 이혜선 시인은 언어를 통해 ‘색즉시공 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깨달음을 노래하며, 인간의 인식 너머에 있는 진리의 문턱을 열어 보인다.

이혜선 시인의 삶의 가치철학은 단 하나의 진실로 귀결된다. “모든 존재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환되어 다시 피어난다.” 그는 자연 속에서 삶의 순환을 읽고, 그 순환 속에서 구원의 논리를 찾는다. 그의 시는 비움의 미학이며, 동시에 충만의 예술이다. 허방 속에 꽃을 피우고, 침묵 속에 생명을 들려주는 시인—그가 바로 이혜선이다.

‘색을 먹고 공을 낳다’는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적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 색과 공, 유와 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우주의 언어이다. 그는 언어를 빚는 시인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을 옮겨 놓는 시의 연금술사다. 이혜선 시인의 시는 단순한 서정의 차원을 넘어, 생명과 신성, 그리고 영원의 진리를 담은 존재의 시학으로 나아간다.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허방꽃으로 다시 피어난다.”

그 말은 곧 이혜선 시인 문학의 영원한 선언이다.

ㅡ청람

□ 이혜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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