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혜초 시인 송(頌) ― 늘샘의 시학, 생의 향기로 피어나다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안혜초 시인 송(頌) ― 늘샘의 시학, 생의 향기로 피어나다 2025.10.09
□ 안혜초 시인
■
안혜초 송(頌)
― 늘샘의 시학, 생의 향기로 피어나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녀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꽃잎처럼 부드러운 봄빛이 번진다. ‘늘샘’이라는 호(號) 그대로, 말은 조용하나 그 속엔 끝없는 생명수가 흐른다. 한 시대의 문학이 격랑 속을 건너던 1967년, 《현대문학》을 통해 추천받으며 세상에 첫 시를 내놓은 이래, 안혜초는 반세기 넘게 변함없는 목소리로 ‘인간다움’과 ‘사랑의 온도’를 노래해왔다.
그녀는 시로 세상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이 잠시 잊고 있던 마음의 결을 다시 일깨웠다.
『귤·레몬·탱자』에서 보여준 신맛의 미학은 삶의 알싸한 눈물과도 같다. 탱자의 가시는 시련이지만,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향은 순결한 생명이다. 『달 속의 뼈』에서는 세월의 고독을 은유한 언어가 빛바랜 달빛처럼 서늘하게 번진다. 인간 존재의 상처를 드러내되, 그것을 절망이 아닌 구원의 징표로 바꾸어내는 그녀의 시선은 신앙적 투명함을 닮았다. 『살아있는 것들에게』에서는 생명에 대한 경외를, 『푸르름 한 줌』과 『쓸쓸함 한 줌』에서는 덧없음 속에서도 단단히 살아 있는 존재의 품위를 노래했다. 그녀의 시는 늘 ‘살아 있음’ 자체를 예배한다. 살아 있음은 곧 아픔이며, 또한 은총이다. 그것은 인간이 신의 숨결을 이어받았다는 증거이며, 생의 가장 숭고한 체험이다.
안혜초의 언어는 부드럽지만 단단하다. 마치 햇살에 반짝이는 탱자빛 물결처럼, 그녀의 시는 감미롭되 그 안에 칼날 같은 진실을 품고 있다. ‘레몬의 신맛 속에도 사랑의 결이 있다’는 그녀의 시어처럼, 인생의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힘이 그녀의 문학을 지탱해왔다.
그녀의 문장은 인간의 체온을 머금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시를 읽는 일은 곧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며, 그 따스한 손끝이 독자의 상처를 덮는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화려하지 않다. 외려 절제된 미와 담백한 정서가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 이전에, 시처럼 사는 사람이었다. 문단의 중심보다 주변의 따뜻함을, 명예보다 나눔을 선택한 삶. 수많은 직함 —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세계여기자작가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대외협력위원, 한국기독교문협 고문, 이화여대 동창문인회 회장 — 은 그녀의 발자취를 증언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깊은 것은 ‘이화를 빛낸 시인’으로서의 인간적 품격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였으며, 자리를 빛내기보다 자리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품성은 마치 겨울 강 위로 비치는 희미한 햇살처럼, 은은하되 따뜻했고, 그 온기는 문단을 넘어 사람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친필 시비 두 점 — 충북 모산의 〈안개 속에서〉, 전남 화순의 〈우리 사랑 지금은〉 — 은 시인의 생애를 상징하는 영원한 시편이다.
〈안개 속에서〉는 인생의 불확실 속에서도 잃지 않은 투명한 시선의 기록이다. 그녀는 안개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짐 속에서도 남는 것’으로 읽었다. 그리고 〈우리 사랑 지금은〉은 시인의 생애가 걸어온 길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은 과거가 되었으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피어 있는 사랑, 그것이 그녀의 문학이었다. 세월의 파도는 수없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시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그 언어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과 ‘사랑’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빛낸 수많은 상 — 한국PEN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영랑문학상, 한국문학예술상 대상, 미당시맥상, 이화를 빛낸상 등 — 은 그녀의 문학이 시대를 품고 있었다는 증표다. 그러나 그녀에게 상은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이었다. 문학은 그녀에게 명예의 제단이 아니라 예배의 제단이었다. 시는 기도였고, 언어는 찬송이었다.
그녀는 신앙으로 시를 썼다. 단어 하나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그 겸허한 손끝이야말로 시인 안혜초의 존재 이유였다. 그녀의 시 한 줄은 믿음의 고백이자, 인간에 대한 가장 순결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늘샘’이라는 이름처럼 그녀의 문학은 마르지 않는다.
젊은 날의 열정은 생의 샘을 이루었고, 중년의 시절은 그 샘 위로 그늘을 드리웠으며, 노년의 평화는 그 물 위에 잔잔한 빛을 얹었다. 안혜초의 시는 시간의 강을 건너면서도 흐름을 잃지 않은 물이다.
그것은 한국 서정의 근원이며, 여성 시인의 시대적 품격을 세운 하나의 거대한 기둥이다.
오늘, 한가위 달빛 아래에서 그를 다시 부른다.
귤의 향기와 레몬의 빛, 탱자의 신맛이 섞인 생의 노래 속에서 —
“안혜초 시인, 당신의 시는 아직도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녀의 언어는 여전히 향기롭다.
세월의 먼지 위에서도 지워지지 않는 그 향,
그것은 한 시인이 남긴 가장 맑은 흔적이며,
우리 마음의 샘으로 오늘도 맑게 흐르고 있다.
2025, 한가위
늘샘 안혜초 시인의 시학에 바치는 헌정 송가
ㅡ청람 김왕식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