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혜 시인의 시 '또 하나의 생의 동맥' ― 절망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생의 노래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조덕혜 시인의 시 '또 하나의 생의 동맥' ― 절망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생의 노래 2025.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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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생의 동맥
시인 조덕혜
알몸 다 드러내고
곤두박질쳐 부서지는 소낙비야
쉽게 다가갈 수 없던
너의 피바다에 감히 뛰어들어
넙죽 엎드렸을 때, 비로소
시커먼 가슴앓이를 행궈낼 수 있었고
요란한 너의 함성만큼이나
한시름 녹아 흐름은 소생의 시작이었으리
먹구름 걷힌 투명한 창공
은빛 가루 내리는 하늘사랑이여
내게 세월이 남아 있는 한
파스텔 톤의 미소를 꿈꾸는
작은 날갯짓, 이마저 덥석 접을 수 없음은
내가 생존하여
소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또 하나의 생의 동맥이고 싶어서리.
□
조덕혜 시인
1996년 월간<문학공간>신인상(조병화시인 추천)
<시집>
『비밀한 고독』
『별에게 물었다』 외 공저 다수
<수상>
월간문학공간본상,
세계문화예술대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상,
경기도문학상본상,
경기PEN문학 대상 수상.
<직분>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국제PEN경기지역위원회 부회장, 한국문화예술연대 부이사장,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서울시인협회 이사
한국경기시인협회 이사,
수지문학회 부회장, 『셋』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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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혜 시인의 시 ‘또 하나의 생의 동맥’
― 절망의 심연에서 이끌어 올린 생의 노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조덕혜 시인의 시는 언제나 생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 피어난다.
그는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외려 그것을 껴안고, 부서진 언어의 파편을 모아 새로운 숨결로 엮는다. 그에게 시는 장식이 아니라 생존의 행위이며,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가장 인간적인 의식의 불꽃이다.
‘또 하나의 생의 동맥’은 그 정신의 결정체로, 죽음과 생, 파멸과 부활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을 노래한다.
첫 연의 “알몸 다 드러내고 / 곤두박질쳐 부서지는 소낙비야”는 육체와 영혼을 동시에 적시는 통렬한 세례다. 시인은 이 세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외려 “너의 피바다에 감히 뛰어들어 / 넙즉 엎드렸을 때”라 고백하며, 고통의 심연 속으로 스스로 몸을 던진다. 그것은 삶의 본질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기이며, 절망의 강을 건너기 위한 의식이다.
“시커먼 가슴앓이를 행궈낼 수 있었고”라는 구절은 내면의 독소가 비로소 정화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고통을 씻어내는 이 장면은 인간 존재의 부활을 상징한다.
이어지는 “요란한 너의 함성만큼이나 / 한시름 녹아 흐름은 소생의 시작이었으리”라는 대목은 시인이 발견한 구원의 언어다. 절망의 함성 속에도 생의 맥박은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그는 안다.
삶은 멈추지 않는다. 죽음조차 그를 소멸시키지 못한다. 그 모든 고통의 파도가 지나간 뒤, 잔잔히 솟구치는 ‘흐름’이야말로 생의 본질임을 시인은 체득한다.
두 번째 연으로 넘어가면, 시의 질감이 단숨에 투명해진다. “먹구름 걷힌 투명한 창공 / 은빛 가루 내리는 하늘사랑이여”라는 대목은 어둠을 통과한 자만이 볼 수 있는 세계의 맑음이다. 조덕혜 시인은 이 밝음을 단순한 희망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것은 고통을 완전히 수용한 후에야 얻을 수 있는 내면의 평정, 즉 ‘구원 이후의 고요’다.
“내게 세월이 남아 있는 한 / 파스텔 톤의 미소를 꿈꾸는” 이 구절에서 그는 생의 색채를 다시 그린다. 그 색은 화려하지 않다. 부드럽고 희미하지만, 그 절제된 빛이 더 깊은 울림을 낳는다. 그는 인생을 회한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 남은 세월을 ‘소생의 동맥’으로 여긴다. 마지막 행 “내가 생존하여 / 소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 또 하나의 생의 동맥이고 싶어서리.”는 존재 선언이다. 시인은 생존 자체를 시의 윤리로 삼는다. 살아 있음이 곧 저항이고, 숨 쉬는 순간이 곧 시의 본질이다.
조덕혜 시인 시의 미의식은 고통과 희망의 어름을 넘나든다. 그녀의 언어는 격렬하지만 결코 요란하지 않고, 슬프지만 결코 침잠하지 않는다. 고통은 그녀의 시에서 절망의 근원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기 위한 정화의 통로로 작용한다. 이처럼 그녀는 인간의 상처를 숙성시켜 시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 결과, 시의 언어는 고통을 닮되 고통을 초월한다.
그녀의 삶의 가치철학은 ‘소생의 윤리’라 할 만하다. 무너짐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 상처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이끌어 올리는 힘, 그것이 조덕혜 시인을 지탱하는 근원이다. 그녀는 세상의 어둠을 부정하지 않고, 그 어둠 속에서 빛의 길을 찾는다. 그것이 시인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동시에 인간이 견뎌야 할 이유다.
‘또 하나의 생의 동맥’은 단순한 생존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과 절망을 통과한 자만이 부를 수 있는 찬미의 노래다. 삶을 버티는 이의 마지막 한 가닥 숨, 그 숨이 바로 시의 동맥으로 이어진다. 조덕혜 시인은 그 동맥을 통해 다시 피를 돌리고, 그 피로 언어를 적신다. 그래서 그의 시는 살아 있다. 그 살아 있음이야말로,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희망의 문장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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