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하로동선 夏爐冬扇 ― 쓸모없음의 시간에도 꽃은 핀다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하로동선 夏爐冬扇 ― 쓸모없음의 시간에도 꽃은 핀다 2025.10.10
하로동선 夏爐冬扇  ― 쓸모없음의 시간에도 꽃은 핀다

하로동선 夏爐冬扇

― 쓸모없음의 시간에도 꽃은 핀다

청람 김왕식

여름 한가운데 화로를 켜는 사람은 없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부채를 부치는 이는 더더욱 없다.

세상은 언제나 시기를 재며, 효율을 따진다.

그러나 그 계산 너머에, 쓸모없음의 시간 속에서만 자라는 영혼이 있다.

그 이름이 바로 하로동선(夏爐冬扇)이다.

사람들은 늘 유용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쓰임이 없으면 버려지고, 쓰임이 끝나면 잊힌다.

그러나 삶은 계산의 표 안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쓰이지 않음으로서 오래 남고,

어떤 존재는 침묵함으로서 세상을 밝힌다.

여름의 화로가 지금은 뜨겁지 않지만,

그 속엔 겨울을 기다리는 불씨가 숨어 있다.

겨울의 부채가 지금은 멈추어 있지만,

그 결 사이로 여름의 바람이 꿈틀거린다.

쓸모없다는 것은 결국 때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누구에게나 계절이 있고, 그 계절에는 어울리는 빛과 그늘이 있다.

젊음의 때는 부채처럼 열정이 넘치지만,

노년의 때는 화로처럼 은은한 온기를 품는다.

그 온기와 바람이 서로를 잇는 순간,

비로소 인간은 계절을 초월한 존재가 된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세상이 쓸모없다고 내친 것들이,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것들이 아닐까.

눈에 띄지 않는 따뜻함,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다정함,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품격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화로다.

문학이란 것도 그러하다.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문장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한 줄이 된다.

하로동선의 진리는 결국 “무용의 유용(無用之有用)”이다.

지금 당장은 필요 없어도,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을 덥히는 순간이 온다.

시간은 모든 것을 순환시킨다.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

지금 쓰이지 않는 것이, 내일의 생명을 품는다.

그러니 조급히 자신을 다그치지 말라.

잠시 멈춘 것도, 쓸모없어 보이는 순간도,

모두 다 삶의 호흡 속에 포함된 준비의 시간이다.

하로동선의 존재는 그것을 알려준다.

생각해보면,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하로동선’이다.

세상은 우리를 효율로 평가하지만,

삶은 언제나 불필요한 아름다움으로 완성된다.

사랑도, 예술도, 신앙도 모두 당장의 쓸모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계절 속에서 천천히 익어간다.

겨울의 부채를 버리지 마라.

그 부채는 여름의 바람을 기억하고 있다.

여름의 화로를 버리지 마라.

그 화로는 겨울의 어둠을 밝혀줄 불씨를 품고 있다.

하로동선은 그렇게 말한다.

쓸모없음의 시간에도 의미가 있고,

기다림의 계절에도 생명이 있다.

결국 하로동선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그것이,

정말 쓸모없는 것인가?”

인생의 진정한 쓰임은 지금이 아니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누군가의 겨울 속에서 드러난다.

그러니 오늘, 불필요한 것들 속에 고요히 머물라.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 화로의 불빛이 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덥히는 바람 한 줄기로 남으라.

그리하여 우리는 안다.

쓸모없음은 결코 헛됨이 아니라,

다른 계절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쉼표임을.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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