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장건섭 시인의 시 '폭식' ― 결핍을 통한 사랑의 자각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장건섭 시인의 시 '폭식' ― 결핍을 통한 사랑의 자각 2025.10.10
장건섭 시인의 시 '폭식'  ― 결핍을 통한 사랑의 자각

폭식(暴食)

시인 장건섭

아내가

단 하루만 집을 비워도

나는 폭식(暴食)을 합니다

아내의

그 빈자리가 허전해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고 또 먹고

또 먹을 것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끝내

나는

혼자

밤새 배앓이를 합니다

아내가 집을 비운 것은

단 하루뿐인데도

언제나 비좁기만 하던 집 전체가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만큼이나

넓어 보입니다

오늘도 아내는,

간밤에 전라도 지역에 폭설이 내렸다는

텔레비전 아침 뉴스를 보다가

갑자기

눈雪이 보고 싶다며

엄마가 보고 싶다며

아침 설거지도 뒤로 미룬 채

허둥

허둥대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정말

눈이 보고 싶은 것일까?

정말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일까?

혹시,

고향의 눈 소식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도

떠올려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는,

결국 저녁노을이 질 무렵

고향 가는

기차역을 향해

집을 나섰습니다

아내를 실은

기차는

저녁노을과 함께 지나가는데

서울에도

아내에게 그리움을 주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밤도 폭식을 합니다.

장건섭 시인

1958년 전북 익산 출생

‘서라벌문예’시부문 신인상 수상하며 등단

시집

《단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의 서시》, 《돌아서기》 등이 있음.

장건섭 시인의 시 ‘폭식’

― 결핍을 통한 사랑의 자각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장건섭 시인의 시 ‘폭식’은 일상의 사소한 행위를 통하여 인간 내면의 결핍과 사랑의 본질을 포착한 작품이다. 그에게 폭식은 단순한 식탐이 아니라, 부재(不在)가 낳은 허기의 은유다.

‘아내가 단 하루만 집을 비워도 / 나는 폭식을 합니다’라는 첫 행은 유머처럼 보이지만, 곧 결혼생활의 긴 세월 속에 감춰진 의존과 외로움을 드러낸다. 시인은 아내의 빈자리에서 ‘먹는다’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불안과 그리움을 스스로 메우려 한다. 그것은 허기를 채우기 위한 폭식이 아니라, 사랑의 결핍을 달래려는 무의식의 행위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아내의 부재를 견디지 못함을 ‘배앓이’로 고백한다. ‘혼자 / 밤새 배앓이를 합니다’라는 구절은 단순한 육체적 통증을 넘어, 사랑의 불균형에서 오는 심리적 고통을 함축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비좁기만 하던 집”이 그녀가 떠나자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만큼이나 넓어 보인다”고 한다.

익살스러운 비유 속에는 결혼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상대의 존재에 의해 규정되는지를 드러내는 역설이 숨어 있다. 사랑은 함께 있을 때보다 떠나 있을 때 더 선명히 인식된다는 사실, 시인은 이를 생활어로 포착한다.

중반부의 전개는 일상의 서사적 전환을 통해 감정의 결을 더욱 섬세하게 엮는다. 아내가 ‘눈이 보고 싶다’며, ‘엄마가 보고 싶다’며 갑자기 떠나는 장면은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지만, 시인은 그 안에서 여성의 내면 풍경을 짚는다. 화자는 묻는다. ‘정말 눈이 보고 싶은 것일까? 정말 엄마가 보고 싶은 것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혹시, 고향의 눈 소식에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도 / 떠올려졌던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상념은 사랑의 본질이 결국 타인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아내의 마음을 향한 의심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다층적인가에 대한 시인의 철학적 사유다.

아내를 실은 기차가 저녁노을 속을 지나가는 장면에서 시는 절정에 이른다. ‘서울에도 / 아내에게 그리움을 주는 /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라는 대목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부부의 정서가 눈이라는 상징으로 다시 하나로 이어지는 미학적 결합을 보여준다. 눈은 차가운 물질이지만, 이 시에서는 그리움의 온도로 녹아내린다. 따라서 폭식은 단순히 입으로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공허를 삼키는 일이며, 동시에 사랑을 확인하는 역설적 의식이다.

장건섭 시인의 시 세계는 언제나 일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큰 서사나 관념의 세계보다, 생활 속 미세한 틈새에서 인간의 본질을 발견한다. 그 시선은 따뜻하고 유머러스하며, 사소한 것을 통해 보편의 감정을 일으킨다.

1958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서라벌문예’를 통해 등단한 그는, 늘 인간관계의 진솔함과 사랑의 지속성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시집 《단 한 사람을 위한 사랑의 서시》, 《돌아서기》또한 그러한 정서의 연장선에 있다.

‘폭식’은 유머의 옷을 입은 철학적 시다. ‘먹는다’는 인간의 본능을 통해 ‘사랑한다’는 영혼의 결핍을 드러낸다. 먹을수록 허기지는 마음, 채워도 비어 있는 공간, 그것은 곧 인간 존재의 실존적 아이러니다. 시인은 그 허기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본다. 사랑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통해 완성된다는, 역설의 미학이다.

장건섭 시인의 시는 결코 과장되지 않는다. 일상의 언어, 소박한 장면, 그러나 그 속에 깃든 진심이 읽는 이의 마음을 서서히 적신다. 그의 시에는 인생의 허기를 품은 따뜻한 미소가 있다. 그것이 바로 장건섭 시학의 미의식이며, ‘폭식’은 그 대표적 성취라 할 만하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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