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내리는 부엌의 온기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을비 내리는 부엌의 온기 202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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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내리는 부엌의 온기
청람 김왕식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짙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마당 귀퉁이 감나무 잎새마다 빗방울이 매달려 반짝인다.
빗소리 따라 부엌에서는 김치전 굽는 소리가 지글지글 이어진다.
기름 냄새에 젓가락이 절로 움직이고, 고소한 냄새가 마을 끝까지 번져간다.
할머니는 오래된 앞치마 자락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이 비만 그치면 김장 걱정도 덜 텐데” 하신다.
아궁이 불길이 후끈하고, 구수한 연기가 처마 밑으로 빠져나간다.
커다란 놋대야에 반죽된 김치전 반죽은 거품이 송글송글 올라와 있고, 그걸 국자로 퍼서 팬에 얹을 때마다,
빗소리보다 더 정다운 소리가 부엌 안에 울린다.
문턱 너머 사랑방에선 어른들이 둘러앉아 탁주잔을 돌린다.
막걸리의 흰 거품이 잔을 넘치면 “이거 봐라, 올해 쌀이 좋아서 술맛이 달다” 하시며 웃음이 터진다.
누군가는 젊은 날 논밭에서 뛰던 얘기를 꺼내고, 누군가는 군대 갔던 아들의 편지를 이야기한다.
비가 더 굵어질수록 그 웃음은 더 깊어진다.
세월이 빗물처럼 흘러도, 이런 밤이면 그때 그 얼굴들이 다시 모이는 것만 같다.
마루에선 아이들이 신발도 벗지 않고 뛰어 들어와 “전 다 됐어요?” 묻는다.
할머니는 “그놈 참 식탐은 여전허다” 하며 웃음으로 답한다.
뜨거운 전 한 조각을 접시에 덜어주면, 아이들 손끝에 기름이 번들거린다.
밖에서는 국화꽃잎이 떨어져 빗물에 흘러가고, 들녘엔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때 들리던 빗소리, 막걸리 잔 부딪히던 소리, 김치전 굽는 냄새,
그 모든 것이 오래전 잊었던 어린 날의 저녁처럼 다시 되살아난다.
세상은 변했어도,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그때의 불빛이 남아 있다.
비 오는 저녁, 부엌의 따뜻한 온기와 사람들의 웃음 속에서
추억은 김치전처럼 노릇노릇 익어간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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