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보는 눈, 사람을 읽는 눈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물을 보는 눈, 사람을 읽는 눈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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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을 보는 눈, 사람을 읽는 눈
청람 김왕식
사람들은 내게 종종 묻는다.
“어떻게 그리 미세한 감정을 포착합니까?”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건 아마, 내가 어려서부터 별난 아이였기 때문일 겁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는 버릇이 있었다.
길가를 걷다가도 하늘을 보기보다 땅을 먼저 봤다.
개미가 한 알의 빵조각을 끌고 가는 모습을 보며,
‘저 녀석도 오늘 식구들 끼니를 책임지느라 바쁘구나’ 하고 감정이입을 했다.
거미가 줄을 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두 시간이 훌쩍 지나,
그만 오줌을 지려 어머니께 등짝을 세차게 얻어맞은 적도 있다.
그날 어머니는 “도대체 너는 사람이냐 거미냐!” 하셨지만,
나는 여전히 거미의 섬세한 발끝을 잊지 못했다.
그 투명한 다리로 바람 한 줄기에도 흔들리지 않던 균형감각,
그것이 내게는 인생의 첫 ‘미학 강의’였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나의 ‘관찰벽’은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이 축구공을 차며 소리 지를 때,
나는 운동장 구석에서 민들레 홀씨가 언제 날아오를지 기다렸다.
바람이 불면 홀씨가 흩어지겠지만, 그 속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씨앗’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는 이미 평론가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사람보다 사물에게 먼저 말을 걸고,
이야기보다 침묵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버릇이 생겼으니까.
군대 시절은 또 하나의 희극이었다.
자기소개서의 취미란에 “종로서적 앞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기”라고 써넣었다가
선임하사에게 “군 생활이 장난이냐”는 꾸중과 함께 엉덩이를 얻어맞았다.
나는 그저 사실대로 썼을 뿐이었다.
그 시절 내게 사람 구경은 인생 공부였다.
누군가는 서둘러 걷고, 누군가는 멈춰 서서 하늘을 본다.
그 다채로운 표정과 걸음걸이, 말 없는 사연들이 내겐 시보다 아름다웠다.
군대에서는 철학보다 제식이 우선이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 세상엔 감상하기엔 너무 빡빡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비 오는 날 창문에 맺힌 빗방울이 아래로 미끄러지는 모습을 보며
‘누가 먼저 도착하나’ 속으로 내기를 걸었고,
지렁이가 흙 속에서 꿈틀거리며 다시 숨어드는 모습에선
“인간도 저렇게 조용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엔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쓸데없는 걸 유심히 보니?”
그 말에 나는 웃으며 답했다.
“세상에 쓸데없는 건 없어. 다만 우리가 보지 않을 뿐이지.”
평론가가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별난 눈’ 덕분에 나는 오늘의 나로 서 있다.
남들이 지나치는 조약돌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고,
길섶의 풀잎 하나에도 철학이 숨어 있다.
그 미세한 떨림 속에서 나는 인간의 마음을 읽는다.
평론이란 결국 ‘관찰의 기록’이다.
작품 속 한 문장, 한 구절의 결이 왜 그렇게 울리는지를 찾기 위해,
나는 여전히 마음속 돋보기를 꺼내 든다.
나의 글에는 유난히 ‘작은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개미, 거미, 지렁이, 조약돌, 들꽃….
그것들은 나의 세계를 떠받치는 상징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사람을 이해했다.
거미는 인내를 가르쳤고, 개미는 공동체를 알려주었으며,
들꽃은 겸손을, 조약돌은 묵묵함을 가르쳐주었다.
그들에게는 이름도, 명예도, 박수도 없었다.
그 조용한 존재감이야말로 내가 사랑한 문학의 본질이었다.
이제 누군가 내게 다시 묻는다.
“청람 선생, 평론이란 결국 무엇입니까?”
나는 잠시 웃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평론이란, 세상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지요.
그 오래된 시선 속에 사람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걷는다.
길가에 엎드린 개미에게 말을 걸고,
전봇대에 매달린 거미줄을 유심히 본다.
사람들은 그걸 ‘한가한 시인병’이라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삶을 존중하는 관찰의 예술’이라 부른다.
내가 평론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대단한 학문 때문도, 번쩍이는 이론 때문도 아니다.
그저 작은 것을 오래 바라보는 마음,
보잘것없는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눈,
그것 하나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등짝에 남은 그 매자국조차
이제는 나의 문학적 상처이자 훈장이다.
그때 거미가 내게 속삭였던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세상을 엮으려면 먼저 조용히 기다려라.”
그 말 한 줄이 내 평생의 문장이다.
그 문장은, 지금도 내 글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작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나고 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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