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가을의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무심의 노래 ― 내장사 대우 큰스님의 '어느 가을 날'을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가을의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무심의 노래 ― 내장사 대우 큰스님의 '어느 가을 날'을 읽고 2025.10.15
가을의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무심의 노래 ― 내장사 대우 큰스님의 '어느 가을 날'을 읽고

□ 내장사 대우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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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기을 날

내장사 대우 큰 스님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를 물어와서

버리고 갈 줄 아는 낙엽이나

붙들고 있다 하였더니

낙엽의 그 무게가

얼마냐 물어와서

바람에게 물어보라고

일러 주었네

고요도 몸져누운 뜨락에

낙엽이 지는 날에는

바람 따라 가고 싶으나

빈손이 부끄러워

산새 울어 금이 가는

먼 먼 허공이나 훔쳐보고 있다네

가을의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무심의 노래

― 내장사 대우 큰스님의 ‘어느 가을 날’을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대우 큰스님의 시 ‘어느 가을 날’은 가을 산사의 고요 속에서 탄생한 한 편의 깨달음의 시詩이며, 스님들의 禪問答이 언어의 경계를 넘어 시로 화(化)한 작품이다. 이 시는 어느 가을날, 내장사 단풍이 엷게 물든 산사 뜰에 앉아 계시던 큰스님께 한 스님이 전화를 걸어온 순간에서 비롯되었다. “스님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단순한 안부가 스님의 마음속에서 사유의 파동이 되어, 마침내 한 편의 선시로 피어난 것이다.

시의 첫 구절 “어떻게 지내냐는 / 안부를 물어와서”는 인간적 정이 담긴 일상의 언어로 시작되지만, 이내 “버리고 갈 줄 아는 낙엽이나 / 붙들고 있다 하였더니”로 전환되며 일상의 질문이 깨달음의 문으로 들어간다. 스님에게 ‘낙엽’은 단순한 가을의 잎이 아니라, 세속의 미련과 집착을 상징한다. 버릴 줄 아는 것이 수행이지만, 여전히 낙엽 하나 붙들고 있는 마음, 그것이 인간의 정이요, 수행의 숙명이다.

스님은 ‘낙엽의 무게’를 논하지 않는다. 다만 “바람에게 물어보라” 하신다. 이 한 구절에 대우 큰스님의 사유가 응축되어 있다. 진리는 설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 속에서 깨닫는 것이다. 바람은 곧 無心의 상징이며, 그 흐름이 바로 道이다. 스님의 대답은 선문답의 형식을 띠지만, 그 속에는 “말하지 않고도 가르치는” 불도의 언어가 숨어 있다.

“고요도 몸져누운 뜨락에 / 낙엽이 지는 날에는”이라는 대목은 그 고요함조차 잠시 쉬어가는 자연의 순환을 노래한다. 고요함마저 병든 듯 누워 있는 가을날, 스님은 “바람 따라 가고 싶으나 / 빈손이 부끄러워”라고 읊는다.

여기서 ‘빈손’은 해탈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미련을 드러낸다. 모든 것을 버린 뒤에도 남는 한 줌의 연민과 부끄러움—그것이 바로 인간의 진정한 佛道다.

불교의 ‘空’은 단순한 비움이 아니다. 그것은 비워진 그 자리에서 새로이 피어나는 연민의 감정, 다시 세상을 품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다. 큰스님은 그것을 ‘빈손의 부끄러움’으로 표현했다. 버림의 끝에서도 남는 온기, 그것이 수행의 완성이다.

마지막 연 “산새 울어 금이 가는 / 먼 먼 허공이나 훔쳐보고 있다네”는 무심과 연민이 만나는 경지다. 산새의 울음은 無常의 울림이며, 허공에 금이 간다는 것은 고요 속에서 깨달음이 스며드는 장면이다. 스님은 그것을 ‘훔쳐본다’고 한다. 즉, 깨달음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보는 듯하지만 취하지 않고, 느끼되 머물지 않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대우 큰스님의 불도적 시선이다.

이 시는 본질적으로 ‘말과 침묵의 어름’에 서 있다. 제자가 던진 안부의 한마디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선 질문이 되었고, 스님의 답은 침묵의 언어로 돌아왔다. 禪의 세계에서는 말이 곧 수행이자 시이며, 대화가 곧 깨달음의 길이다. 하여, 이 작품은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선문답의 시적 구현이자 ‘말 없는 대화’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대우 큰스님의 언어는 화려하지 않다. 그 절제 속에는 ‘깨달음의 여백’이 존재한다. 낙엽과 바람, 새와 허공, 모든 자연이 법문이 되고, 그 법문이 다시 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자연과 불법이 하나로 이어지는 ‘不二法’의 세계다.

그의 시는 교리보다 고요하고, 철학보다 따뜻하다. 수행자의 내면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그리움과 겸허를 드러내며, 결국 “자연은 곧 경전”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을 완성한다.

내장사의 가을 산문에 앉아 바람과 낙엽을 지켜보던 그 순간, 스님은 이미 말없이 설법하고 계셨다. 한 스님의 안부가 한 편의 시가 되고, 그 시가 다시 법이 되었다.

‘어느 가을 날’, 그것은 결국 한 통의 전화가 낳은 깨달음의 노래이자,

말과 침묵이 하나로 어우러진 ‘무심의 시’,

그리고 자연과 인간, 스승과 제자가 하나 되는 가을의 법문이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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