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정년 이후, 다시 피어나는 인간의 봄 ― 김화순 시인 시 세계의 통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정년 이후, 다시 피어나는 인간의 봄 2025.10.16
정년 이후, 다시 피어나는 인간의 봄

□ 김화순 시인

정년퇴직

시인 김화순

정년퇴직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석방되지 않은 언어와

몇 권의 책을 가슴에 묻고

부화를 꿈꾸며

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며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타인의 삶을 곁눈질하며

펼쳐보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이

새롭게 도전하는 환승역이다

  • 이 시는 2025년 서울시 지하철공모전에

선정된 시이다.

정년 이후, 다시 피어나는 인간의 봄

― 김화순 시 세계의 통찰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김화순의 ‘정년퇴직’은 인생의 종착점에서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을 노래한 시다. 이 작품은 오랜 세월의 노동과 헌신을 마무리하고 맞이하는 자기 성찰과 내면의 부활의 시간을 담고 있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가 아닌, 또 하나의 장을 여는 선언문이라 할 만하다.

시의 첫 구절, “정년퇴직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표현은 인생의 종말을 부정하고, ‘정년’이라는 제도적 개념을 초월한다. 그 부정의 언어 속에는 ‘끝’으로 정의된 사회적 관념에 대한 시인의 조용한 저항이 담겨 있다. 김화순 시인에게 정년은 멈춤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만나러 가는 여행의 출발선이다.

“석방되지 않은 언어와 / 몇 권의 책을 가슴에 묻고”라는 대목은 시인의 삶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병원 현장에서 십수 년간 일하며, 그는 수많은 생의 탄식과 기도를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자신의 언어는 늘 ‘석방되지 않은 채’ 가슴속에 머물러 있었다. 시인은 이제 그 억눌린 언어를 풀어놓고, 삶의 잔향을 문학으로 부화시키는 것이다.

“부화를 꿈꾸며 / 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며 /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는 시의 전환점이자 핵심 사유다. ‘부화’라는 은유는 오랜 세월의 고단함 속에서 깨어나는 새로운 자아를 상징한다. 정년은 종결이 아니라 내면의 부화, 즉 나를 새로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이제 시인은 타인의 생을 돌보던 자리에서 물러나,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여정에 들어선다.

마지막 연의 “타인의 삶을 곁눈질하며 / 펼쳐보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이 / 새롭게 도전하는 환승역이다”는 이 시의 결론이자 희망의 선언이다. 인생의 노선은 멈춤이 아니라 환승으로 이어진다. 젊은 날 미처 펼치지 못했던 꿈을 이제 다시 꺼내어, 늦게라도 새롭게 시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퇴직은 정지선이 아니라 환승역이며, 시인은 그곳에서 ‘두 번째 인생’이라는 열차를 타고 있다.

김화순 시인의 현실은 바로 그 시의 진실을 증명한다. 오랜 병원 근무를 마친 후 그는 지금 도서관을 오가며 책을 읽고, 시를 쓰고, 시 낭송을 배우며 인생의 이모작을 꿈꾸고 있다. 누군가는 쉼을 택할 나이에, 그는 배움을 택했고, 멈춤 대신 언어의 생명을 길러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년퇴직’이 보여주는 실존의 구현이자, 시인이 삶으로 쓴 후속 구절이다.

이 시에는 단정하고 절제된 언어 속에서도, 삶을 이해한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평화와 통찰의 미학이 깃들어 있다. 언어, 책, 부화, 환승 ― 네 개의 시어는 지식과 삶, 신앙과 성찰을 잇는 상징들로 서로 연결되어, 시인의 세계를 투명하게 비춘다.

요컨대, ‘정년퇴직’은 한 시대를 마친 사람에게 주는 위로의 시이자,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희망의 시다. 김화순 시인은 말한다. “정년은 끝이 아니라, 나를 다시 부화시키는 시간”이라고. 바로 그 통찰이 이 시를 단순한 퇴직의 노래가 아닌, 삶의 본질을 꿰뚫는 인간의 승리의 노래로 만든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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