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

논문과 인간, 그 깊은 아이러니 ― 유완 연세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의 ‘내 논문 읽다 바보 됐다’를 읽고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논문과 인간, 그 깊은 아이러니 ― 유완 연세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의 ‘내 논문 읽다 바보 됐다’를 읽고 2025.10.16
논문과 인간, 그 깊은 아이러니  ― 유완 연세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의 ‘내 논문 읽다 바보 됐다’를 읽고

□ 유완 연세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내 논문 읽다 바보 됐다.

유완 연세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

한참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 교통 학회지에 (Evaluating Value-of-Time fir Travel Based on the Linear Logit Choice Model, (로짓 모형에 의한교통시간 가치 산정에 관한 연구) 라는 제목으로 대한 교통학회지 제2권 제1호, pp.69-88, 1984 에 내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오랫만에 꺼내서 다시 읽어보니 무슨 소리를 쓴 것이지 모르겠다. 허참, 저자는 유완 혼자인데. 지금의 유완이 옛날의 유완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문장도 매끄럽지 못한데, 글을 읽어보니 되게 잘난 척은 했더라. 좀더 쉽게 풀어 써서 오늘의 유완도 이해 할 수있게 해 주지. 건방졌다. (나는 안다. 모르겠으면 공부해서 따라와 이해해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귀국한 지 5년밖에 안돼 아직 미국 물이 잔뜩 배어 있다. 잘난 척하더라도 해설이나 해 놓지.

난 박사학위 논문을 시작할 때 내 지도교수는 Bruce Allen 이었다. 당시 Boyce 와 Allen 이 공동으로 Lindenwald Highspeed Line 의 연구를 하기위해 대규모 Data 를 수집해 놓았고, 덕분에 이 Data 를 이용하여 아마 2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나는 MCPB 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Lindenwald Highspeed Line 연구팀에 끼는 것보다는 년봉이 4배 정도 높아, Boyce 가 학교로 오면 Full Scholarship 을 주겠다고 했지만, 애가 3인 형편에서 그렇게 쪼들려 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요리 피하고 조리피하며, 나는 연구팀에 끼지 않았다.

Allen 에게 제출한 논문 주제는 방대한 Data 를 여러가지 Sub Group 으로 나누어 Value of Time 을 구하고, Sub Group 마다 그들의 특성에 따라 Value of Time 이 사회 경제적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얼마나 달라지나를 계산 하는 것으로 학위논문의 Frame 을 잡았다. 부심으로는 Boyce 와 Gannon, 모두 젊고 팔팔한 교통전공 내지는 도시경제 전공 교수들이었다. Sub Group 이라면 (남자, 여자) (저소득층, 고소득층) (젊은 사람, 늙은 사람) (Work trip, Shopping Trip, Leisure trip) (NJ 출발, Phila.출발) 등 여러가지로 나누고, Logit Mode Choice Model 을 이용, 시간, 요금, 소득, 성별 등의 독립변수를 사용하였다. 이건 따논 당상, Data 도 있겠다, Logit Model Program 도 있겠다, 컴퓨터도 있겠다, 보름이면 작업은 끝날 것이고, 통계 값이 어떻게 나오든 다르다는 것도 콰이 스퀘어 방법이면 반나절로 끝난다. 영어도 그때는 제법 잘 하고 있어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루루라라! 컴퓨터 결과로 구라만 치면 학위는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지를 않는다. 왜? 왜? 왜? 왜? 여기서 부터 나의 99고개가 시작되었다.

  1. 기존의 선택 이론이 잘못되었나? 한동안 그걸 들여다 보고, 좀더 개선을 해 보았는데, 특성선택이론이라는 것을 개발했는데 조금 낳아지기는 했지만 문제 해결이 완벽하지 못했다. 2. 최우도 함수 (Maximum Likelihood Function) 로 Non-linear Program 을 개선하면 낳아지려나? Midified Newton-Rapson Method 를 개발, Computer Program 을 만들었다. Non-linear Program 도 각가지를 다 써 보고, UMTA 와 집촉, 개발중인 ULOGIT Program 의 Source File 을 얻어 Users Manual 을 내가 만들어 사용해 보았지만 조금 개선, 완전하지가 못하다. 3. 문제는 Multicolinearity 에 있다. 짧은 거리가는 사람은 기차를 타던 자동차로 가던 먼 거리 가는사람에 비해 시간도 적게 걸리고, 비용도 싸다. 근본적으로 자료 속에 다공선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걸 없애보자. 그래서 Ridge Regression 을 적용했다. 이는 Factor Analysis 를 뒤집어 사용하는 것이지만, Value of Time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니, 시간과 요금이라는 변수의 이름을 유지해야 한다.그래서 Name Preserving Transformation 이란 방법을 개발했다. 다공선성이 있는 변수를 시간변수와 요금변수를 직각이 되도록 독립시키고 (Orthogonalization) 다공성성을 만드는 부분은 Factorizing 하여 하나의 변수로 사용했다. 조금 낳아 졌는데 완전하지는 못하다. 4. Value of Time 은 시간의 Coefficient 와 요금의 Coefficient 의 비율로 계산한다. 우도함수(Likelihood Function) 가 아주 동그란 것은 아니다. 초우도 점을 구하는데 최우도 함수가 원점에서 보았을 때 좌상-우하로 길게 생기면 최고점 근처에서 게ㅣ산의 약간의 오차가 있어도 비율은 크게 변하지 않지만, 좌하-우상이 되면 우도함수의 최고점이 약간만 변해도 비율은 크게 변한다. 그런데 그런 Data로 일반적이 Linear Logit Model 을 사용하면 약간의 최우도함수의 변화에도 Coefficienr의 비율에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쉽게 말해 Value of Time 을 이런식으로 구하는 것은 아주 불확실 하다는 것이다.

문제가 이쯤되고 나니 논문 진전에 시간이 많이 걸렸고, Allen은 자기 능력으로는 지도가 감당이 안된다고 손들서 버렸고, Gannon 은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Boyce나보고 년봉을 1/4로 줄여서라도 자기 밑으로 오라는데, 그럼 내 생활이 안된다. 사실 이때는 이미 직장을 그만둔 때라서 1/4 라도 돈을 주면 좋은 것이었지만, 내가 그의 과목을 택했을 때 성적을 B를 주었다. 당시 나는 MCPB 에서 연방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실행을 위한 Project 로 Group-Ride 라는 것의 Proposal 을 작성하던 중, Boyce 에게 미리 집행을 위한 Project 인데 그 신청서를 과목의 보고서로 내겠다고 허가를 받았었다. 그 신청서는 연방정부 (Fed.DOT) 에서는 가장우수한 신청서라며 비용을 더 주겠다고하고 (MCBP 의 Director Douglass Powall 이 부족분은 자기가 책임지겠다며 제출한 금액도 MCBP에서는 해 본 적이 없는 큰 Project 라고 했고, 근처의 버스, 택시 노조, 정부 각기관, 대형 회사들과 직접 타협을 이끌어 내는 일이었다.) 진행과정도 전화보고로 끝내도록 했던 일이다. MCPB 에서는 졸지에 교통팀이 따로 나가 사무실을 차렸고. 내 책임 아래 28 명 (환경팀 포항) 이 있어 나머지 MCBP 인원과 맞먹는 규모였다. 그런데 미리 허락했던 Boyce 는 Project 집행 신청서가 학술적인 면이 약하다며 성적을 B를 주었다. 이건 처음 Boyce 에게 허가를 받을 때부터 학술 Paper 가 아닌 집행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던 것, 나는 년봉1/4로 자기 아래 강압적으로 들어오라고 할 때부터 피했던 것에 보복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Group-ride project 는 Job-transportation 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이 되었다.

내 논문의 방향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나의 지도교수는 Allen 이 소개해준 Tony Smith 가 맡게 되었고, Miller 와 Fijita 가 부심이 되었다. Boyce 가 Smith 에게 전화하여 자기를 부심 Committee에서 빼지 말라고 당부를 해서 부심이 한 명 더 많았었지만 실제로 Boyce는 한 실이 없었다. 내 논문이 끝나기 전에 Boyce가 Northwestern 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Smith 에게 장거리 전화를 하여 자기를 Committee 에서 빼지 말라고 부탁을 했었다.

논문 마지막, 나는 정상적으로 시간과 비용, 기타 소득과 성별 정도의 독립편수를 사용한다면 Lindenwald Highspeed Line Project 와 같이 수십만 개의 Data를 구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도 Data Set 은 100개만 되도 Coefficients 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기존의 방식으로는 Value of Time 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다시 Lindenwald Highspeed Line 의 Data 를 이용, Origin-destination 을 고정하여 Data 를 추출한 후, Random 하게 Data 를 하나씩 추가하며 Coefficient 를 구해보면 아마도 60 개 정도의 Sample 이 추가 되면서 Coefficient 의 변화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만일 시것이 사실로 증명할 수 있다면, Logit Model 을 시용한 간단한 연구는 Sampling 을 100명정도로만 해도 될 것이다. 이것을 내 논문에 쓰고 싶었다.

Smith 가 내 방을 찾아왔다. (네가 그동안 연구한 것이 충분하다. 이제 그것들을 정리해서 끝내고 학위를 받아라.) (저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적정 Sampling 의 규모를 밝히고 싶습니다.) (그건 학위 끝나고 나가서 해라.) 그래서 쫒겨나게 되었다. (Boyce에게는 어떻게 할까요?) (연락 안해도 돼. 내가 책임질게.) (왜 Logit Model 로 Value of Time 을 얻기가 어려운지를 보다보니 이걸 제목을 어떻게 해야 마무리가 되나요?) Smith 가 곰곰 생각하더니 (Contributions of … 라고 하먼 되.) 그래서 내 논문의 제목이 결정되었다.

논문은 3부를 Loose Leaf (제본하지 않고 낱장) 로 학과에 제출하게 되어있다. 학과에 하나, 대학 도서관에 하나, Northwestern 대학에 보내 사진판 논문을 제작하게 하나를 보낸다. Miller 는 내 논문의 부심이기도 하지만 Ph.D. Program Director 이어서 물었다. (Oral Defence 는 언제로 계획 할까요?) (필요 없다. Tony Smith 가 됐다는데 누가 감히 뭐라고 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 되었다. 학과의 사무원이 묻는다. (Are you married?) 밥은 굶지 않을 것 같은가 보다. (Yes, I am married and have 3 children.)

미국 물이 잔뜩 올라있을 때 기곳난 학회지 논문, 어떤 놈시 썼는지 글도 되게 못 썼다. 좀 읽고 싶도록 쓰지.

(시간의 기치는 로짓 모델을 이용하면 위험하다. 이유는 계수가 안정되지 않는다. 계수가 안정이 안 되면 계수의 비율로 구하는 시간의 가치는 불안정하다.) 이 말을 무얼 그리도 중얼 거렸는지.

“그 유완이 글 쓴 녀석, 참 어리다, 어려”

논문과 인간, 그 깊은 아이러니

― 유완 교수의 ‘내 논문 읽다 바보 됐다’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유완 연세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의 ‘내 논문 읽다 바보 됐다’는 학문적 회고록이자, 인간 존재의 한 단면을 성찰한 지적 자서전의 형식미학을 지닌다.

이 글은 단순한 연구의 기록이 아니라, 젊은 날의 오만과 열정, 그리고 세월이 던져주는 겸허의 교훈이 교차하는 내면의 자화상이다. 제목부터 이미 역설적이다. ‘바보가 됐다’는 자기 비하의 표현 속에는, 외려 학문을 넘어선 깨달음의 깊이가 담겨 있다.

그의 언어는 꾸밈이 없다. 학문적 회상 속에서도 ‘논리’보다 ‘진심’이 먼저다. “오랫만에 꺼내서 다시 읽어보니 무슨 소리를 쓴 것인지 모르겠다.”라는 구절은, 세월이 흘러 자기 자신을 낯설게 바라보는 한 지식인의 고백이다. 젊은 시절의 논문을 향한 유완의 시선은 냉정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는 과거의 자신을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순수한 열정과 진심을 이해한다. 자기 객관화의 언어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풍자하며 또 성찰한다.

그는 연구자의 오만함을 부정하지 않는다. “건방졌다. (나는 안다. 모르겠으면 공부해서 따라와 이해해라.) 하는 소리가 들린다.”라는 문장은 젊은 연구자 특유의 자부심과 독선이 뒤섞인 솔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그 자만은 한 인간의 성장 과정 속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적 자만의 사춘기다. 그때의 자신을 꾸짖으면서도, 그는 알고 있다. 바로 그 건방짐이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유완 교수의 글에는 자기 부정 속의 자기 확신, 즉 지성인의 역설적 품격이 흐른다.

그의 학문 자세는 치열하다. 데이터와 수학적 모델을 다루는 냉철한 과학자의 언어 속에서도, 그는 인간적인 회의와 고뇌를 숨기지 않는다. Multicollinearity, Ridge Regression, Non-linear Program… 어려운 용어들이 등장하지만, 그 속에는 완벽을 향한 집념과 스스로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정신이 있다. 그는 단지 논문을 완성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왜”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사유의 인간이다. “왜? 왜? 왜? 왜?”라며 반복적으로 스스로를 추궁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한 연구자의 집요한 내면 대화를 본다. 학문은 그에게 데이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유완 교수는 학문을 숭배하지 않는다. 그는 연구를 통해 삶을, 인간을, 자신을 배우는 과정을 중시한다. 교수와의 갈등, 연구비의 문제, 지도 체계의 한계 속에서도 그는 냉소로 도망치지 않는다. 그 모든 경험을 통찰로 승화한다. “논문 마지막, 나는 정상적으로 시간과 비용, 기타 소득과 성별 정도의 독립변수를 사용한다면 수십만 개의 데이터는 필요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라는 대목은, 학문이 방대함의 미학이 아니라 본질의 탐구임을 자각한 순간이다.

그는 단순화 속의 진리를 찾는 학자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때의 유완 교수는 이미 젊은 날의 자만을 벗고, 본질로 향하는 겸허한 구도자가 되어 있다.

이 글은 단순한 학문적 회고를 넘어, 세월이 인간에게 남기는 철학적 흔적을 말한다. “그 유완이 글쓴 녀석, 참 어리다, 어려.”라는 마지막 문장은 단 한 줄의 시와 같다. 나이 든 유완이 젊은 유완을 향해 건네는 짧은 독백 속에는,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대화가 있다. 과거의 자신을 비웃으면서도, 결국 그를 용서하는 따뜻한 시선. 그것이 바로 성숙의 언어다.

이 글에는 몇 가지 자아가 교차한다.

젊은 시절의 ‘이성적 자아’ ― 계산과 논리에 몰두하며 확신 속에 살아간다.

실패와 좌절을 겪은 ‘비판적 자아’ ―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스스로의 한계를 직시한다.

나이든 오늘의 ‘통합된 자아’ ― 이성의 자아와 감정의 자아를 하나로 엮어내는 지혜의 단계다.

그는 이처럼 학문을 통해 세상을 배웠고, 실패를 통해 자신을 배웠다.

그의 연구는 ‘논문’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구였던 셈이다.

유완 교수의 언어는 진실하다. 문장은 직설적이고 때로는 투박하지만, 그 속에 담긴 생각은 정직하다. 문체의 거칠음은 오히려 진정성의 문학적 힘으로 작용한다. 그는 글 속에서 이론을 논하지 않고, 그 이론에 얽힌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학문보다 인문적이며, 논문보다 문학적이다.

요컨대, ‘내 논문 읽다 바보 됐다’는 한 지식인의 학문적 반성문이자 인간적 고백문이다. 젊은 날의 자신에게 향한 쓴 미소, 그 속에 담긴 유머와 겸허, 그리고 진정한 학자의 자세. 그는 이제 안다. 진정한 학문은 ‘아는 것’이 아니라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임을.

하여, 이 글은 한 인간이 지식에서 지혜로 이동하는 기록, 즉 학문이 인간을 성숙하게 하는 아름다운 증거로 남는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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