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꿈 ― 청연 김상희 시인의 시에 깃든 생의 회광(回光) ㅡ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첫 꿈 ― 청연 김상희 시인의 시에 깃든 생의 회광(回光) 202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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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꿈
시인 청연 김상희
꿈이었다
그대의 속삭이는 음성
그리고 사랑의 숨결
나눈다는 것이
함께 한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깨달음
나비와 꽃의 만남
절대 변치 않는 환상
밤별 흩어지는 시월의 가을밤
그대와 나는 다시 태어나고
우리들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처럼
우리들도 곱게 물들어간 잊지 못할
밤이었다
산다는 것이
살아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가을빛 한 광주리
그대 창가에 놓고 오리라
깊어가는 가을밤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첫 날
오늘이어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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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꿈
― 청연 김상희 시인의 시에 깃든 생의 회광(回光)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연 김상희 시인의 ‘첫 꿈’은 한 생애의 깊은 내면에서 되살아난 사랑의 숨결이자, 생의 황혼 속에서 다시 피어난 존재의 노래이다.
시는 단순한 사랑의 고백을 넘어, 삶과 죽음, 현실과 꿈,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 교차하는 영적 서정의 세계를 펼쳐낸다.
첫 행의 “꿈이었다”는 단언은 이미 현실을 초월한 경계를 암시한다. 이 꿈은 잠의 영역이 아니라,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의 환시(幻視)다. “그대의 속삭이는 음성 / 그리고 사랑의 숨결”은 존재의 부활을 알리는 서주(序奏)이며, ‘첫 꿈’은 단순한 시작이 아니라 다시 태어남의 선언으로 읽힌다.
“나눈다는 것이 / 함께 한다는 것이 / 살아있다는 깨달음”에서 시인은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 아닌 ‘존재의 방식’으로 인식한다. 사랑은 생존의 증거이며,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자각하는 깨달음이다. 여기서 사랑은 현실의 육체적 관계를 넘어 영적 교감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때 “나비와 꽃의 만남”은 그 영적 합일의 상징이다. 나비는 영혼, 꽃은 육신의 은유로서, 둘의 만남은 생과 사의 합일, 인간과 자연의 조화, 그 모든 존재의 아름다운 순환을 품고 있다. “절대 변치않는 환상”이라는 구절은 사랑의 무상함을 넘어, 그 변치 않음이 바로 시인의 신념임을 보여준다.
이 시의 백미는 중반부 “밤별 흩어지는 시월의 가을밤 / 그대와 나는 다시 태어나고 / 우리들의 사랑은 시작되었다”에서 절정에 이른다. 시월의 밤은 단순한 계절적 배경이 아니라, 생의 순환과 재생을 상징하는 시간이다. 밤별이 흩어지는 장면은 마치 옛 영혼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듯한 환영幻影을 그리며, ‘다시 태어난 사랑’은 윤회의 개념을 넘어선 영혼의 재회이다. 시인은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피안에서 이어가며, 그것을 “시월의 어느 멋진 날”로 노래한다. 이는 단순한 회상의 노래가 아니라, 존재 전체가 사랑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의 찬미다.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처럼 / 우리들도 곱게 물들어간 잊지 못할 밤이었다”라는 대목은 생의 무상함을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단풍의 붉음은 소멸의 색이지만 동시에 절정의 색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 이중성을 사랑의 색으로 전환한다. 늙어감과 물듦이 결코 퇴색이 아니라, 완성으로 향하는 길임을 알기에 그 붉음은 곧 생의 찬란함이다. 그리하여 시의 정서는 허무가 아닌 감사로 귀결된다.
마지막 연 “산다는 것이 / 살아있다는 것이 /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 가을빛 한 광주리 / 그대 창가에 놓고 오리라”는 시인의 전 생애를 압축한 결론이다. 여기서 ‘가을빛 한 광주리’는 시인의 마음, 사랑, 그리고 생의 결실이다. 시인은 그 광주리를 ‘그대 창가에 놓고’ 떠난다. 떠남 속에 머묾이 있다. 그 사랑은 이제 세속의 언어를 넘어선 영혼의 대화로 남는다.
‘첫 꿈’은 청연 시인의 생애 마지막 꿈, 혹은 영혼의 서정이다. 한평생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사랑이, 시월의 가을빛과 함께 다시 피어나며, 그녀는 사랑을 통해 삶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그리움은 슬픔이 아니라 생을 지속시키는 힘이며, 사랑은 죽음을 넘어선 또 하나의 탄생이다.
청연의 ‘첫 꿈’은 사랑의 시이자 존재의 시이며, 재회의 시다. 그것은 육신의 끝에서 다시 깨어난 영혼의 첫 노래이자,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피어난 인연의 기적이다. 시인은 그대에게 가을빛 한 광주리를 건네며 말한다.
“오늘이어라, 오늘.”
그 한마디 속에 생의 찬미와 사랑의 영원이 담겨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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