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시대의 상처를 언어로 건너는 사람 ―시인 이승하 문학의 윤리와 운명 ㅡ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대의 상처를 언어로 건너는 사람 ―시인 이승하 문학의 윤리와 운명 2025.10.17
시대의 상처를 언어로 건너는 사람  ―시인 이승하  문학의 윤리와 운명

□ 이승하 시인

,시대의 상처를 언어로 건너는 사람

― 시인 이승하 문학의 윤리와 운명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승하 시인의 에세이 《시대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다》는 한 인간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해온가를 보여주는 귀한 기록이다. 그는 단순히 한 세대의 시인이 아니라, 시대의 상흔을 온몸으로 끌어안은 ‘증언의 영혼’이다. 그에게 문학은 감상의 장르가 아니라 생존의 증거이며, 고통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을 세우는 도덕적 행위였다.

그의 출생은 이미 비극적 시대의 예언이었다. 1960년 4월, 경북 의성에서 태어난 날, 서울에서는 4·18 고대생 피습 사건이 벌어졌다. 개인의 첫 울음이 국가의 총성과 맞물린 셈이다. 이 운명적인 교차는 그의 문학이 지닌 역사적 감수성의 뿌리이다. 이후의 생애는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시대가 겪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그러나 권력의 사냥개가 아니라 원칙을 지킨 양심인이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어 요 모양 요 꼴이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 속에는 정의를 지키다 좌절한 한 인간의 고독이 스며 있다. 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못한 인간의 존엄을 평생 마음속에 새겼다. 그래서 그의 문학은 단순히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윤리적 저항의 언어였다.

나는 80년대 서울오산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문학시간에 이승하 시인의 시를 제자들과 함께 읽었다. 그때 그의 시 속에서 느껴졌던 것은 단순한 현실 인식이 아니라, 시대를 끌어안은 뜨거운 가슴이었다. 그의 시는 교과서 속의 문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고백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동시대를 가슴으로 아파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를 이어도문학회 방에서 다시 만났을 때, 세월의 강을 건너온 동행자와 마주한 듯 가슴이 먹먹했다. 문학이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인연의 다리임을 그 순간 새삼 깨달았다.

그의 청소년 시절은 상처투성이였다. 가난과 부조리, 학교의 폭력 속에서 그는 문학을 피난처로 삼았다. 김천성의중학교 시절, 권태을 국어 선생에게 “매주 시 한 편을 써오라”는 과제를 받으며 그는 언어의 세계로 들어섰다. 세상이 자신을 억누를수록 그는 시를 통해 존재의 통로를 열었다. 시는 그에게 자유였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한 그는 1979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역사의 비극이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10·26, 12·12, 그리고 5·18 광주. 그는 청년의 눈으로 모든 것을 목격했다. “광주에서 큰 사건이 일어났대.” 그 한 문장은 그의 문학적 각성을 이끌었다. 아버지가 4·19의 경찰이었다면, 아들은 5·18의 시대를 견뎌야 했다. 이 세대적 대립과 윤리적 혼란이 그의 내면에서 한 편의 소설이 되었고, 그것이 바로 신춘문예 당선작 ‘비망록’이었다.

또 다른 대표작 ‘화가 뭉크와 함께’는 그가 시를 통해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였다. 뭉크의 절규처럼, 그는 개인의 고통을 시대의 언어로 바꾸었다. 서정주, 황동규, 홍성원, 송영 같은 거장들이 그의 작품을 뽑은 것은, 그가 문학을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닌 ‘시대의 진실을 말하는 윤리적 언어’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문학에는 ‘유전된 슬픔’이 있다. 어머니의 생애는 전쟁과 분단, 납북과 가난으로 얼룩진 한국사의 또 다른 단면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여학생, 전쟁의 딸, 납북자의 자녀로 살아야 했던 어머니의 삶은 그에게 ‘역사 속 개인의 운명’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단지 개인적 회한이 아니라, 세대의 비극을 짊어진 증언이 되었다.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예수·폭력』, 『뼈아픈 별을 찾아서』 등은 바로 그 고통의 신학적 재해석이었다.

이승하의 문학은 현실의 기록이 아니라 양심의 일기다. 그는 폭력의 시대를 증언하면서도 결코 분노에 휩쓸리지 않는다. 절망을 직시하되, 희망의 언어를 놓지 않는다. 그것이 그의 문체의 품격이다. 냉철한 지성과 뜨거운 인간미가 공존하는 문장, 그것이 곧 그의 문학적 서명이다.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문인이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 “문인은 사실을 재해석하는 사람”이다. 그는 단순히 기록하지 않는다. 그 빈틈에 인간의 숨결을, 눈물을, 기도를 채워 넣는다. 그의 글이 읽힐수록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승하 시인은 시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시대의 고통을 언어로 옮겨놓았고, 그 언어는 한 세대의 윤리적 기억으로 남았다. 그의 문학은 슬픔으로 시작해 구원으로 끝난다. 그것은 문학이 인간을 살리는 힘임을 스스로 증명한 여정이었다.

이어도문학회의 조용한 방 안에서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뜨겁고, 여전히 고요했다. 세월이 흘러도 문학의 본령은 변하지 않는다. 고통을 껴안되 절망하지 않고, 상처를 기록하되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일. 그것이 바로 이승하 시인의 길이며,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그의 문학은 묻는다.

“너는 시대의 고통 앞에서 어떤 언어로 응답할 것인가?”

그 물음 앞에, 나는 여전히 교단에서 그의 시를 읽던 그날의 교사로 돌아간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한다.

그의 문학이 있었기에, 우리는 아직 인간이다.

시대의 상처 위에 핀 언어

청람 김왕식

의성의 새벽, 첫 울음이 총성과 겹쳤다

아이의 울음과 시대의 비명이

한 하늘을 울렸다

그날, 문학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아버지는 방아쇠 대신 양심을 잡았고

술잔 속에서 정의의 조각을 삼켰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이

집안의 오래된 기도문이 되었다

소년은 툭툭한 종아리의 멍으로 배웠다

불의의 교실에서

그는 언어의 문을 열었다

시 한 편이 도망의 길이자 귀향의 길이었다

광주의 연병장, 눈빛은 총보다 차가웠고

서울의 봄은 피 냄새에 젖은 교과서였다

그해, 청년의 펜촉은

총구보다 깊게 세상을 꿰뚫었다

그는 뭉크의 절규와 함께 울었고

비망록의 잉크로

아버지의 침묵을 적었다

시란, 시대의 무덤 위에서 피는 꽃이었다

어머니의 한은 별빛이 되어 그를 비추었고

문학은 상처를 언어로 건너는 다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 다리 위에서 그는 여전히 쓴다

인간을 믿는 문장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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