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 〈숨의 시작〉 —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연원을 노래한 시적 창조의 언어

■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 〈숨의 시작〉 —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연원을 노래한 시적 창조의 언어 2025.10.19
■  청람 김왕식 시인의 시 〈숨의 시작〉 —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연원을 노래한 시적 창조의 언어

숨의 시작

청람 김왕식

빛이 오기 전,

어둠은 이미 빛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소리가 생기기 전,

침묵은 모든 노래를 품고 있었다.

먼지 한 알이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별이 되었고

별은 불을 품어 시간을 만들었다.

시간이 식자

돌이 생겼고

돌 위에 바람이 머물며

첫 생명이 눈을 떴다.

그 눈빛이 나비의 날개를 흔들고

그 떨림이 바다를 일으켜

산맥과 인간의 심장을 만들었다.

인간은 사랑을 배우며 울었다.

그 울음이 언어가 되고

언어가 시가 되어

세상의 숨이 되었다.

이제 모든 존재는

서로의 안에서 자신을 읽는다.

돌 속에도 피가 흐르고

풀잎 안에도 별빛이 산다.

생명은 멀리 있지 않다.

고요의 한가운데서

아직도,

첫 숨이 천천히 이어지고 있다.

〈숨의 시작〉

— 존재의 근원과 생명의 연원을 노래한 시적 창조의 언어

문학평론가 김기량

청람 김왕식의 시 〈숨의 시작〉은 우주의 탄생에서 인간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기원을 하나의 ‘숨’으로 통합하는 장엄한 시적 서사다. 이 시는 단순히 생명현상을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존재의 근원적 떨림과 시간의 형이상학을 탐구한다. 시인의 시선은 천문학과 신비사상, 그리고 인간 내면의 영성을 넘나들며, ‘숨’이라는 단어를 통해 생명의 본질을 조형한다.

서두의 “빛이 오기 전, 어둠은 이미 눈을 떴다”는 구절은 시간 이전의 세계, 곧 혼돈의 질서 속에 잠재한 생명의 예감을 표현한다. 어둠이 빛의 부정이 아니라, 이미 ‘빛의 이름’을 알고 있는 잠재적 존재로 제시됨으로써, 시인은 존재의 시작을 부정이 아닌 가능성의 자리로 인식한다. 이어 “침묵은 오래전부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는 표현은 존재의 본질이 언어 이전의 진동, 즉 ‘숨의 리듬’임을 상징한다. 이 구절은 단어 이전의 언어, 소리 이전의 생명감을 암시한다.

중반부는 우주의 생성과 진화를 시적 은유로 그린다. “먼지 한 알이 꿈을 꾸었다. / 그 꿈은 별이 되었고”라는 구절은 물질의 미시적 입자가 생명의 씨앗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함축하며, 그 꿈을 ‘별’이라 명명함으로써 시인은 우주적 질서와 인간의 상상력을 하나의 연속선상에 둔다. “시간이 식으며 돌이 생겼고 / 돌 위로 바람이 잠들었다”는 구절에서는 냉각된 시간의 흐름 속에 ‘형태’가 생기고, 그 위에서 ‘바람’—즉 생명의 기운—이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과정을 그린다. 생명은 정지와 움직임, 고요와 떨림의 경계에서 태어난다.

이윽고 “첫 생명이 눈을 떴다”는 선언은 우주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서사를 완성한다. 그 눈빛이 “물결을 흔들고 / 산맥을 밀어 올려 / 인간의 심장이 뛰었다”는 구절은 존재의 진화가 물질의 확장뿐 아니라, 감정과 의식의 각성으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자연과 인간의 탄생을 ‘심장의 박동’으로 결속시키는 이 대목은 시 전체의 정점이다.

후반부의 “인간은 사랑을 배우며 울었다”는 문장은 시의 정조를 완성한다. 사랑과 눈물은 생명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마지막 통로이며, 그 울음이 “언어가 되고 / 시가 되어 / 세상의 첫 숨이 되었다”는 결말은 인간의 존재 이유를 ‘창조적 표현’으로 귀결시킨다. 즉, 언어와 시는 단순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우주의 숨이 인간 안에서 다시 호흡하는 형식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담는다.

마지막 연은 깊은 존재론적 결론을 제시한다. “돌에도 피가 흐르고 / 풀잎에도 별빛이 스민다”는 구절은 생명과 무생물, 미시와 거시,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를 해체한다. 이는 물질과 정신,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순환적 생명망으로 보는 생태적 인식이며, “모든 생명은 서로의 안에서 자란다”는 구절로 그 사유는 완결된다. 시인은 여기서 생명에 대한 연민과 경외를 동시에 품는다.

결국 “고요의 심연에서 / 아직도, / 첫 숨은 천천히 이어지고 있다”는 시의 종결부는 시간의 순환과 존재의 무한성을 시적으로 응축한 선언이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이 시의 구조는, 삶의 흐름이 단절이 아니라 연속임을 암시하며, 그 고요 속의 ‘첫 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일깨운다.

〈숨의 시작〉은 시인의 존재론적 사유가 도달한 한 극점으로, 인간의 언어가 감히 다다를 수 있는 경계 너머의 세계를 그린다. 이 시는 신화와 철학, 과학과 영성을 하나의 숨으로 묶어낸 현대의 창세시(創世詩)이며, 시학과 철학이 합일된 고요한 진리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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