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코스모스와 소나기' 원동농부 시인 이종식 의 시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가을 코스모스와 소나기' 원동농부 시인 이종식 의 시를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하다 2025.10.21
□ 텃밭 감을 수확하는 원동시인 이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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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코스모스와 소나기
원동농부 시인 이종식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코스모스가 유난히 곱다.
살랑살랑 기웃거리며 흔들리는 모습이 꼭 우리 마을 현씨 아낙을 닮았다.
홀로 사는 그 여인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웃을 때마다 볼우물이 예뻐
동네 남정네들, 특히 홀애비들의 마음을 쑥쑥 흔들어놓는다.
논밭일로 바쁜 철에도, 누군가는 괜히 트랙터를 세우고
누군가는 들깨 탈곡을 미뤄두고 현씨 아낙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강변횟집에도, 시골밥상에도, 제주흑돼지집에도
그녀를 모시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동네의 화젯거리는 언제나 같다.
“과연 올해는 누가 현씨 아낙의 마음을 얻을까.”
이번 주 금요일, 한마음 원동면민 체육대회가 열린다.
그날이면 동네 홀애비 부대가 가장 들뜬다.
노래로, 춤으로, 악기로 저마다의 매력을 뽐내며
그녀의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으려 애쓴다.
몇 해째 그 자리를 지켜본 나로선 뻔히 안다.
올해도 아마 뽑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현씨 아낙은 언제나 웃으며 노래한다.
“섬마을 선생님”을 부를 때면, 그 음색에 다들 넋을 잃고,
그녀가 돌아설 땐,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는 그 뒷모습에
마을의 가을이 잠시 멈춘다.
주말이면 현씨 때문에 집안이 시끄러운 집도 있다.
“어디 갔다 왔냐”는 마눌의 날카로운 질문에
기초연금 내역이 점점 얇아지는 영감들이 머쓱하게 웃는다.
술기운에 용기를 얻어보지만, 결국 현씨는 웃으며 사라지고
그들의 잔은 허공을 향해 덩그러니 남는다.
“다음엔 꼭 성공해야 하는데…”
횟집을 나서는 그 발걸음엔
쓸쓸함과 연민이 뒤섞여 있다.
이젠 식사만으론 부족하다며 카페까지 간다.
따뜻한 커피 한 잔값이 기초연금의 마지막 조각을 삼킨다.
그래도 다들 즐겁다.
비록 지갑은 비었지만, 마음만은 한때 젊어진 듯하다.
그들의 어눌한 미소에는, 사랑을 잃은 이들만의 순수함이 남아 있다.
새벽녘, 하늘이 울듯 소나기가 쏟아진다.
며칠째 이어지는 비로 텃밭의 펌프도 맥을 못 춘다.
비가 내리면 현씨 생각이, 현씨 생각이 나면 또 비가 온다.
도대체 누가 먼저일까.
동네 홀애비들이 현씨에게 매번 젖듯
나 역시 이 소나기 앞에 속수무책이다.
이렇게 흠뻑 젖은 날이면 문득 생각한다.
우리 인생도 코스모스처럼 바람에 흔들리고,
소나기처럼 쏟아졌다가 어느새 멈춘다.
그 짧은 순간의 빛과 향기가, 그래도 삶을 버티게 한다.
서글픈 인생이여,
그러나 참으로 정겨운 가을날이여.
흙냄새에 섞인 웃음과 외로움,
그 속에서 오늘도 나는 코스모스처럼 흔들리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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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속의 인생, 흙 속의 시심
― 원동농부 이종식의 ‘가을 코스모스와 소나기’를 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종식 작가는 투박하지만 정겹다. 간혹 유머러스하고, 그 안에 맑은 심성을 품은 사람이다. ‘원동농부 시인’이라 불리는 그는 양산의 들녘에서 흙을 일구며 살아가지만, 그 손끝에서 피어나는 글은 세상의 어떤 시보다 따뜻하다. 그의 산문시 ‘가을 코스모스와 소나기’는 삶의 애환과 웃음, 그리고 자연의 이치를 한데 엮은 인간적 서정의 결정체다.
첫머리의 “가을 바람에 흩날리는 코스모스가 유난히 곱다”는 문장은 그 자체로 시적 선언이다. 코스모스는 단순한 계절의 장식이 아니라, 작가가 바라본 인간 존재의 비유이다. 바람에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 그 꽃처럼, 사람도 바람을 맞으며 피어난다. 이종식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지만 진솔하며, 시골의 흙냄새와 사람의 온기가 배어 있다.
그는 마을의 ‘현씨 아낙’을 중심으로 농촌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강변횟집에도, 시골밥상에도, 제주흑돼지집에도 그녀를 모시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대목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속에는 외로움에 기대어 사는 노년의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작가는 결코 그들을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박한 욕망을 연민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섬마을 선생님을 부를 때면 마을의 가을이 잠시 멈춘다.” — 이 한 줄은 이종식 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실의 거친 삶 속에서도 여전히 감동과 설렘을 품을 줄 아는 인간의 마음, 그것이 그가 노래하는 생의 본질이다. 농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작고 느리지만, 그 느림 속에서 진실이 피어난다.
중반부의 묘사는 더없이 생생하다. 기초연금이 줄어드는 노인들의 주머니 사정, 현씨 아낙의 웃음에 젖은 홀애비들의 허망한 술잔, 그 뒤에 남는 공허와 체념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 체념은 절망이 아니다. “비록 지갑은 비었지만 마음만은 한때 젊어진 듯하다.” 이종식의 글에는 언제나 이런 회복의 온기가 흐른다. 그는 삶의 고단함을 유머로 견디며, 외로움을 따뜻한 시심으로 다독인다.
후반부의 ‘소나기’는 작품의 정서적 전환점이다. “비가 내리면 현씨 생각이, 현씨 생각이 나면 또 비가 온다.” 이 구절은 단순한 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생의 순환을 담은 깊은 성찰이다. 사랑과 이별, 기쁨과 허무, 그 모든 감정은 결국 자연의 흐름 속에서 반복되고 스며든다. 작가는 그 순환을 억지로 거스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인정하고 웃어넘길 줄 아는 사람의 지혜로 받아들인다.
마지막 문장, “서글픈 인생이여, 그러나 참으로 정겨운 가을날이여.” — 이 한 줄은 작가의 인생관을 압축한다. 그는 세상과 맞서 싸우는 대신, 있는 그대로를 품는다. 흙처럼 묵직하고, 코스모스처럼 유연하며, 소나기처럼 잠시 울고 웃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노래한다.
이종식의 문학은 꾸밈이 없다. 대신 진심이 있다. 그는 농촌의 일상을 그리지만,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투박한 문장은 오히려 세련된 인생 철학으로 이어지고, 그 해학은 결국 따뜻한 위로로 귀결된다.
‘가을 코스모스와 소나기’는 웃음 속에 눈물이, 소박함 속에 품격이 있는 글이다. 그것은 단지 한 시골의 이야기이면서도,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흙냄새 나는 문장 속에서 인간의 향기가 피어나고, 그 향기는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이종식 작가는 오늘도 그렇게, 흙을 일구듯 글을 쓰며 말한다 — 삶이란 웃으며 견디는 일이며, 사랑은 결국 나눔으로 남는 일이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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