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ㅡ 청람 김왕식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2025.10.21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슬픔이 머물다 간 자리에서

청람 김왕식

밤새 내리던 비가 멎을 때면

창가엔 아직 눈물의 냄새가 남아 있다

젖은 마음을 털어내려 해도

한 구석엔 언제나 너의 그림자가 눌어붙어 있다

잊겠다고 다짐한 날마다

그 다짐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너를 잊는 일은

내 안의 나를 버리는 일이었으니까

한때는 사랑이 세상의 전부였다.

그대가 웃으면 하루가 빛났고

그대가 등을 돌리면

밤이 끝없이 길어졌다

그때 나는 몰랐다

사랑이란, 머물지 못해 아름다운 것임을

시간은 모든 상처를 덮어준다지만

덮인 자국 아래엔 아직 뜨거움이 남아 있다

그 뜨거움이 식어갈 때마다

나는 조금씩 살아진다

살아진다는 말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안다

너무 깊은 사랑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른 이름으로 남는다는 걸

그건 바람에 섞인 목소리

비 오는 밤 창가에 기대 선 기억

아직도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조용한 불빛 같은 것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듯

모든 슬픔은 언젠가 노래가 된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는 오늘도 너 없는 길을 걷는다

그 길 위에 피어난 들꽃 한 송이

그 향기 속에서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한다

ㅡ청람

댓글

로그인 없이 바로 남길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인이 수정·삭제하려면 이 댓글의 비밀번호를 정해 주세요. 서로 예의를 지켜 주세요.

  1. 불러오는 중…